얄미운 포르투

그런데 있잖아, 흐린 하늘아. 조금만 맑은 하늘로 반겨주면 안 될까?

by 지안
얄미운 포르투_0.jpg 내 기억과는 사뭇 달라진 숙소로 가는 길


다시 만난 포르투는 처음 만난 그날처럼 깜깜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나는 이 길을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당당하게 외치며 찬과 함께 공항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3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분명 숙소까지 가는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았고, 나 말고는 사람도 없었는데… 가로등이 이렇게 밝지도 않았었는데…’


당혹스러움을 감춰야 했다. 나는 지안투어의 척척 가이드니까. 3년 사이에 길을 새로 만들고 가로등을 싹 교체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때는 혼자여서 무서운 마음에 길을 잘못 들었던 걸까. 정답을 영원히 알 수 없는 질문을 붙잡고 있는 사이,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처음과 달리 자연스럽게 체크인을 마쳤다. 여권을 달라는 요청에도, 시그니처를 적어달라는 요청에도 자연스럽게 응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시그니처가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는 이야기를 이제는 웃으며 풀어놓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향했다.


3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 작은 책상과 옷장, 간이 책상이 전부지만 안락한 공간. 같은 방은 아니었지만 구조가 같은 방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익숙한 공간에 편안한 사람과 함께라는 생각에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지 않았는데도 긴장이 벌써 풀렸다. 낯섦이 주는 설렘도 좋지만,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더 좋은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모험가 체질은 아닌 듯했다.


세면도구와 잠옷을 꺼내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잠을 청했다. 새벽 2시였다.


“우리 푹 잘 자고, 내일부터 재미있게 여행해 보자!”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보내게 해주세요. 온통 구름과 비 그림이 가득한 일기 예보가 틀리게 해주세요. 두 손을 꼭 쥐고 포르투에게 기도하며, 스르륵 잠에 들었다.


얄미운 포르투_1.jpg


뒤척이다 살짝 뜬 눈 사이로 보이는 창밖이 회색이었다. 아직 새벽이라 그런 거겠거니 싶었는데, 오전 7시의 하늘이라는 걸 알고 조금 서글퍼졌다. 포르투가 내 기도를 듣지 못한 걸까. 아니면 기도가 부족했던 걸까. 생각지도 못한 날씨에 덜컥 겁이 났다.


‘이런 날씨라면 어디를 데려가도 내 기억 속 그 감동은 없을 텐데…’


골목 끝에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던 도루 강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기다려 온 여행이었다. 그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찬이 처음 만나는 포르투가 너무 삭막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의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포르투가 내 기도를 다 들어줄 의무는 없다. 여행 내내 매일이 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 보았지만, 잔뜩 토라진 마음은 그 차분한 위로를 도무지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행 첫날부터 이렇게 흐린 하늘을 보여주다니. 3년 만에 다시 만난 포르투가 반가우면서도 야속했다. 날씨를 바꿀 수는 없으니, 어디부터 가면 좋을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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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리구스도, 상벤투역도, 볼량시장도 성에 차지 않았다. 흐린 날에 가기 좋은 장소들을 떠올리다 생각을 멈췄다. 포르투에 왔는데, 첫날에 도루 강을 안 볼 수는 없었다.


우리만의 시간으로 가득 채우고 와야지, 하고 다짐하던 밤을 떠올렸다. 우리에게는 2주의 시간이 있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고, 포르투에 익숙해져 보는 하루를 보내보자고 다짐했다. 함께 하는 여행은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거니까.

작은 다짐이 계속해서 필요한 하루였다.


맑은 날의 포르투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서 더 아쉬운 마음이었다. 기대와는 전혀 다른 하늘을 보여주는 포르투가 괜히 얄미웠지만,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다. 포르투에 온 사실 자체가 좋았으니까.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얄미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포르투를 사랑했다.


회색빛 구름 아래에서 우리의 첫 번째 해외여행, 나의 두 번째 포르투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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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있잖아, 흐린 하늘아.

조금만 맑은 하늘로 반겨주면 안 될까?

내가 사랑에 빠졌던 파란 포르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어.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