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대신 에세이를 씁니다

집에 불이 나면 앨범부터 챙기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

by 지안

"집에 불이 나면, 뭐부터 챙길 거야?"

"나는, 앨범!"


나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앨범이라고 답할 수 있다.

매일 쓰는 노트북도 큰맘 먹고 산 카메라도 소중하지만,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겨있는 앨범만큼은 포기하기 어렵다.

너무 어려서 기억조차 없는 아기 때의 모습은 물론이고,

지금은 별거 중인 부모님과 한집에서 오손도손 살던 순간.

앨범 속 사진은 그런 순간이 분명 있었음을 증명해주니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도 대신 기억하고 있는 우리 집 앨범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텀블벅 독립출판_8.jpg 앨범, 사진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힘들 때마다 앨범 속 행복했던 순간을 비타민처럼 꺼내 먹었다.

그래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잔뜩 쌓아두고 자주 떠올린다면, 행복한 사람이 될 테니까.

하지만 모든 순간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기란 어려운 일이다.

붙잡아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는 순간들이 아까워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좋아하는 것은 뒤로 미뤄두어야 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늘 돈이 안 되는 거였다.

게다가 추억만 먹고살 수도 없었다. 생존에 필요한 건 진짜 음식이었으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취업 준비를 했다.

UX/UI 디자이너가 되어보겠다고 6개월 동안 부트캠프를 수료했다.

하지만 막상 자기소개서, 자소서를 쓰려고 하니 글이 써지지 않았다.


“몰입해 본 경험을 서술하시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매사에 진심을 다했지만, 몰입해서 해 본 일이 없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들만 열심히 해냈을 뿐이었다.

거짓말에 서툴다. 몰입해 본 경험을 거짓으로 써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진심을 다해 몰입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미있게 한 일은 뭐가 있을까.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뭐 하고 싶어?”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었다.

“사진 찍고, 글도 쓰고 싶어.”


어쩌면 한량 같은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2025년 4월부터 딱 1년의 시간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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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 있던 5월부터, 11월 성과공유회까지 부지런히 달렸던 6개월. 경기청년 갭이어는 끝났지만, 내 갭이어는 아직 남아있기에


마침 경기도에서 하고 싶은 거 해보고 싶은 청년, 800명을 모으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다행히도 3.2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젝트형 참여자로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진전을 열어볼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사진전을 기획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추억을 기록할 수 있어서라는 걸.


그래서 사진전 대신,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 보기로 했다.

돈 걱정 없을 때, 언젠가의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책을 쓰기로 했다.

돈 걱정은 태산이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작가가 되어보기로 했다.


텀블벅 독립출판_9.JPG 경기청년 갭이어의 최고 장점, 멘토링!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 갭이어 8할은 빚이다.

미래의 내가 벌어야 할 돈과 시간을 가불해서 살고 있다.

프로젝트 비용을 지원받았지만, 내가 잡아둔 갭이어 기간은 1년이기 때문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 생활비가 딱 그렇다.

매달 카드값을 내야 할 순간이 찾아오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곁을 지켜준 사람이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좋아하는 거 한번 해 보자.”


미래를 약속한 사람에게 믿음을 건네받았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나는 그 믿음에 빚을 지고 있다.

나를 믿어준 사람과,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는

이 빚을 반드시 빛으로 갚아낼 수밖에 없다.


물론 두렵다.

신중한 성격이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뭐든 쉽게 해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늘 완벽한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내가 가진 이야기를, 최상의 퀄리티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을.

하지만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로 도망치고 싶었던 내게,

지금의 나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은 문장이 나타난 뒤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텀블벅 독립출판_10.jpg 딱 필요한 순간에, 내게 늘 도움을 주던 언니가 추천해 준 책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 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나는 뛰어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내 시선은 유일하다.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니까.

완벽한 타이밍은 영원히 오지 않을 테니, 나는 일단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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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믿을 건 나뿐이다.

방황이 길었던 만큼 디자인, 브랜딩, 스토어 운영 등

발만 살짝 담갔던 분야들의 경험을 믿어본다.


하루 종일 데굴데굴 머리 굴려 가며 짠 계획표를,

그리고 그 계획을 하나씩 지워나갈 나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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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만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2026년 4월, 갭이어 1년의 끝자락.

벚꽃이 피는 시기에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가

독립 출판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독립 출판에 텀블벅 펀딩에 도전한다.



텀블벅 독립출판_4.jpg 나름 꼼꼼히 세워둔 주간 계획, 부끄러우니 흐릿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는 게 처음이라 불안과 설렘이 가득하지만.

더 이상 완벽이라는 모호한 기준 아래,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사람이고 싶지 않기에.


자소서 대신 에세이를 쓰기로 한 20대 끝자락 어느 겨울날,

텀블벅 펀딩&독립 출판 도전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글은,

완벽한 때를 기다리느라 시작을 고민하고 있는

나와 닮은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용기의 기록이다.


일단 해보는 삶을 위하여, 아자아자!




매주 화요일, 텀블벅&독립 출판 도전기 나눠볼게요! ˚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