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도시의 단골집

포르투에 단골 식당이 생겼다. 여행지에서 단골집이 생긴다는 건,

by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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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스테이크랑 프란세지냐 1/2 사이즈 부탁해.”

"이거랑 이거 주문하는 거 맞아?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을 텐데!"

"괜찮아! 둘 다 먹어보고 싶어서."

"음. 그러면 한 번에 준비해 줄까? 아니면 하나를 다 먹은 다음에 두 번째 메뉴를 준비해 줄까?"


첫 포르투 여행, 혼자 메인 메뉴를 두 개 주문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몰라 부린 욕심이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머뭇거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하나씩 천천히 먹어봐. 다 먹을 때쯤 다시 물어보러 올게."


혹시 다 못 먹을까 봐 걱정하면서도, 내 결정을 존중해 주는 듯한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먼저 나온 메뉴 하나를 다 먹어갈 때쯤 다시 웃으며 다가온 그가 말했다.


"다음 메뉴 줄까? 괜찮아?"

"응, 좋아. 이거 맛있다!"

"대단한데! 알겠어. 곧 가져다줄게."


친절한 서비스, 자극적이지 않고 입맛에 딱 맞는 메뉴들. 여기는 몇 번을 와도 좋을 식당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 여행, 찬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았다.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이 식당을 혼자만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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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자 3년 전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나무를 닮아 따뜻한 공간. 식탁과 의자, 식기 대부분이 원목이고, 직원 유니폼도 베이지와 브라운 톤이라 규모가 꽤 큰 식당임에도 아늑했다. 여전히 빈자리보다 채워진 자리가 더 많았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식당이구나. 언제 다시 와도 이 모습 그대로 이곳에서 나를 반겨줄 것 같다는 생각에 이곳이 더 좋아졌다. 익숙한 풍경에, 익숙한 메뉴를 주문했다. 혼자 왔을 때 맛있게 먹었던 추억의 메뉴를 찬과 함께 먹기로 했다. 양파 스테이크와 포르투갈 전통 음식, 프란세지냐. 그리고 샹그리아 한 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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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와서 혼자 이거랑 이거 다 먹었다?”


과거의 영광을 찬에게 자랑했다. 신기했다. 혼자서도 다 먹었던 걸 둘이서 나눠 먹었는데, 누구 한 명 모자람 없이 배부른 양이었다. 메뉴 두 개를 주문한 나를 걱정해 주던 서버의 반응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과거의 나는 위대(胃大)했나 보다. 아니면 그새 메뉴 양이 줄었나, 위가 줄었나.


우리는 며칠 뒤 기어코 이 식당을 다시 방문했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생각이 났다. 사실, 이 식당은 포르투에만 네 개의 지점이 있다. 그중 두 군데가 포르투 시내에서 가기 좋은 위치에 있어서, 이번엔 다른 지점을 찾아갔다. 같은 이름의 식당이지만, 다른 지점에 가면 새로운 식당에 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익숙한 맛이지만 공간은 새로우니, 질릴 틈이 없다.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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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에서는 또, 처음과 같은 욕심을 부렸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은 자꾸 욕심을 부리게 만든다. 위대했던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며 샐러드 하나, 메인 메뉴 둘, 사이드 둘에 레드 샹그리아까지 알차게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들로 테이블이 금세 가득 찼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 그 메뉴들을 다 먹어도 괜찮겠냐는 다정한 질문은 없었지만, 다양한 맛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있었다.


포르투에 올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이 식당을 찾아가겠지. 아직 못 가본 지점에도 가봐야 하고, 추억을 떠올리며 이미 다녀온 지점에도 방문해야 하니까. 문득 예전 자기소개서에 썼던 문장이 떠오른다. “국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의 나는 국밥보다는 사골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은근한 불에서 오래 끓일수록 더 깊고 진한 맛을 내는 사골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는 사람. 뭐, 국밥이면 어떻고 사골이면 어떤가. 뜨끈한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뭐가 되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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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식당을, 사골 국물 우리듯 아주 오래 좋아할 것 같다. 꽃을 닮은 모양의 양파튀김도, 양파 소스를 끼얹은 스테이크도, 트러플 맛이 나는 크로켓과 비슷한 리쏠이라는 메뉴도, 새콤하고 부드러운 문어샐러드도 입맛에 잘 맞았으니까. 샹그리아를 처음 먹어본 곳도 여기고, 샹그리아가 이렇게 맛있는 술이라는 걸 깨달은 곳도 여기다. 맛있는 음식에 곁들여 먹는 새콤달콤한 낮술 한 잔이 주는 해방감, 그 기분 좋은 알딸딸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온통 좋은 기억뿐인 이곳을 어떻게 다시 가지 않을 수 있을까.


포르투에 단골 식당이 생겼다. 집 앞 국밥집에 방문하듯 자주 갈 수는 없지만, 포르투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몇 번이고 방문하고 싶은 곳. 길지 않은 여행 일정 중 같은 식당을 여러 번 간다는 건, 새로움을 포기하고 익숙함을 선택하는 일이다. 포르투에 있는 수많은 식당, 그중에서 내 취향에 꼭 맞는 식당을 찾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고집스러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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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행지에서 단골집이 생긴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다.

머나먼 곳에 나의 동네가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