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포르투를 사랑하는 방법

백기를 들었다. 날씨가 이겼다.

by 지안
포르투 여행_1.GIF 여행 둘째날 만난 흐린 날의 포르투


우르르-쾅!


백기를 들었다. 날씨가 이겼다. 이번 여행은 흐린 날의 포르투와 더 자주 만났다. 비 오는 날의 포르투는 몇 번 봤어도, 낙뢰가 치는 건 또 처음이었다. 여행 둘째날인데, 낙뢰라니. 온 세상이 순간 번쩍 빛나고, 그 소리에 놀란 갈매기들이 순식간에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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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포르투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어떤 날에는 최고의 날씨로 반겨주다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비를 뿌리며 변덕을 실컷 부리기도 했다. 이토록 다채로운 포르투라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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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포르투를 만나게 될 줄 몰랐던 어느 날.

웬일로 파란 솜사탕을 닮은 하늘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날씨잖아. 햇빛 따뜻한데 바람은 시원한.”

“그치! 날씨까지 완벽하다, 찬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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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아 볼을 간지럽히는 따사로운 햇살과 기분 좋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오후였다. 그동안 지도에만 저장해두었던 곳들을 하나씩 가보기로 했다. 포르투 가정식을 먹을 수 있다는 로컬 식당에서 꽤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코리안 카페를 찾아갔다. 믹스커피의 달달함과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시원함을 누리며 한국과 포르투를 오가는데, 사장님이 다정한 미소와 함께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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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붕어빵 나왔습니다.”

“앗, 저희가 붕어빵을 주문했나요?”

“제가 주문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귀여운 붕어빵 네 조각을 선물받았다. 그야말로 달콤한 오후였다. 당도 충전했겠다,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곳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한 날씨였지만 이런 날씨는 온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누려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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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씨에 가기 딱 좋은 곳이 있어.”

“그래? 좋아. 가보자!”


어디인지 묻지도, 듣지도 않고 좋다고 답하는 찬에게 웃으며 목적지를 말했다. 맑은 날에 가고 싶어서 아끼고 아껴둔 곳이라 오늘 가면 좋을 것 같다고. 75m 높이에서 포르투 전망을 구경할 수 있는 곳. 나선형 계단을 약 240개 정도 올라야 하지만, 꼭대기에 오르면 그 모든 수고가 한순간에 잊히는 곳. 바로 클레리구스 성당Igreja dos Clérigos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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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시내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오며가며 여러번 마주치다보면 어떤 곳인지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10분 정도 기다려서야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10분은 꽤 긴 시간이다. 주변을 구경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겠다, 매표소를 나온 우리 손에 통합권 2장이 들려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프로모션에 넘어가버렸다. 전망대와 비디오 매핑 쇼까지 함께 볼 수 있는 티켓이 16유로였다. 매일을 계획 없이 여행하는 우리는 통합권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시간 뿐이니까. 다음 비디오 매핑 쇼가 여섯시 사십오 분에 시작한다고 하니, 여섯 시에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쇼를 보러 가면 되겠다는 멋진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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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건 일찍 먹어야 하는 법인데, 전망대 구경을 너무 미뤄두었던 탓일까. 여섯 시까지 한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이 하늘이 우중충해졌다. 클레리구스 성당 뒤가 분명 푸른색이었는데 회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시간 만에 하늘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은 푸른데, 내 머리 위에 있는 하늘만 흐렸다. 비도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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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하늘을 괜히 째려보며 심술을 부려보았지만, 구름은 내 속도 모르고 몸집을 불려 나갔다. 하늘은 언제 맑았냐는 듯 회색 솜사탕이 되었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르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포르투 대성당도,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도, 도루강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포르투의 오렌지빛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회색빛 하늘과 오렌지빛 지붕. 색으로만 놓고 보면 근사한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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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뎅- 뎅- 종소리가 여섯 번 정도 울리더니 이내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르간 선율에 아쉬운 마음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좋아하는 풍경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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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쇼 시작 시간이 되어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클레리구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흐린 하늘은 까맣게 잊혀졌다. 성당 벽과 천장 전체를 무대삼아 펼쳐지는 빛의 공연에 삼십 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당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음악,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시시각각 바뀌는 미디어아트에 어느새 회색빛 하늘에 대한 원망은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그동안 나는 늘 맑은 날의 포르투만 떠올렸다. 흐린 날의 포르투는 계획에 없어서, 뭘 하면 좋을지도 모른채 회색빛의 하늘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의 포르투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길 준비가 됐다. 비디오 매핑 쇼 같은 실내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애절한 목소리로 슬픔을 노래하는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 Fado 공연을 보러 간다거나, 19세기에 지어진 포르투 전통시장 볼량시장 Mercado do Bolhão을 구경한다거나,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 가이아 지구의 와이너리 투어를 하면서 흐린 하늘을 잊고 포르투를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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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았다가 흐렸다가. 삼 년 만에 만난 포르투는 제멋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포르투를 사랑한다. 미워할 수 없는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 그러니 나는 흐린 날의 너를 즐기는 방법을 다양하게 알아두는 수밖에.


너를 더 깊이,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