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
나 지금 행복한 것 같아.
확신이 없었다. 분명 이 감정은 행복인 것 같은데, 단언할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행복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포르투가 익숙해질 즈음, 근교로 향했다. 줄무늬 마을이라고 불리는 코스타 노바 Costa Nova가 궁금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가장 빠른 아베이루 Aveiro 행 기차표를 끊었다. 출발 시간은 3시 50분이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나…’
기차 안에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연푸른빛 하늘이 노르스름한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기차 타기에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 풍경이 아름다웠다. 기차표를 발권해 준 역무원이 떠올랐다. 그의 친절은 아베이루로 향하는 풍경만큼 따뜻했다. 내가 산 건 기차표가 아니라 설렘이었나. 포르투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한 시간가량을 달려 아베이루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의 베니스라고 불리며, 곤돌라를 닮은 몰리세이루 Moliceiro가 운하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운하 도시다. 하지만 아베이루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코스타 노바 행 버스를 기다릴 때뿐이었다. 벌써 오후 5시였다. 20분을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들어가서야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요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코스타 노바 마을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부들이 자신의 집을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밝은색 줄무늬로 집을 칠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줄무늬 옷을 입게 되었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집 사이에서 묘한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 늦게 와서 그런 건지, 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분위기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은 7시에 가까워졌다. 완벽한 노을을 보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보고 싶었다. 발길이 자연스레 바다 쪽으로 향했다.
너무 좋다. 너무 예뻐.
웅장했다. 대자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 코스타 노바 비치 Costa Nova Beach는 대서양 그 자체였다. 모래 언덕을 넘어야 비로소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광활한 바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압도당했다가, 빨려 들어갔다. 그림 속 한 풍경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귓가에 바람과 파도 소리가 멤돌았다. 고운 모래 결 사이를 걸어 나갔다. 신발을 신었음에도 모래사장의 부드러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솜사탕을 쭉 늘려놓은 듯한 구름이 부드러운 푸른빛으로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대서양 너머로 귤빛 해가 서서히 저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홍과 보라가 섞여, 하늘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솜사탕이 되어갔다.
물이 초록빛이야. 물멍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온종일 멍하니 바라보고 싶은 바다였다. 한참을 말없이 쳐다봤다. 행복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행복이라는 거구나.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렸다.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생김새가 없어 그동안 어떤 게 행복인 줄 몰랐는데, 행복이라는 감정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우연히 마주한 행복이라 더 반가웠다. 나 혼자 느끼기 아까운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 풍경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아쉬움만큼 눈에 담고 또 담았다.
행복은,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