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이런 돌발 상황을 모두 나 혼자 해결해야겠구나.
짐을 쌌다. 풀었다. 다시 싸고 또 풀었다.
내가 가방에 넣어두지 못한 건 나의 불안이었나 보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낯선 곳에서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 봐, ‘혹시’하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여러 번 챙겼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세 시. 캐리어와의 싸움이 길어졌다. 애를 얼마나 썼는지, 땀이 주르륵 흘렀다. 결국 샤워기로 몸을 식혔다. 뜨거운 물줄기로 어깨를 적셨다. 짐과 함께 넣어두지 못한 긴장과 불안을 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그래, 괜찮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일 텐데. 필요한 건 거기서 살 수 있을 거야.
네 시간쯤 눈을 붙였다. 출근하는 엄마를 먼저 배웅했다. 앞으로 약 2주 동안 엄마를 볼 수 없다니.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 적이 있었던가. 기분이 이상했다. 둥지를 처음 떠나는 아기새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부지런히 공항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서 캐리어를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낑낑거리며 들다가, 포기하고 계단에 바퀴를 부딪치며 요란하게 내려왔다. 캐리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초보 여행자였다. 결국 내 불쌍한 캐리어는 제대로 굴러가 보지도 못하고 고장 나고 말았다. 공항에서 캐리어를 살 수 있나 싶어 검색창을 한참 붙잡고 있었다. 인천공항 캐리어 구매, 수리, 파손...검색어가 계속 바뀌었다. 구매는 어려웠지만, 수리는 가능했다. 수리점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나만 걱정하면 될 줄 알았는데, 가방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설상가상이었다. 캐리어를 고치니 가방이 말썽이었다. 가방이 말썽꾸러기인 건지, 가방 주인인 내가 말썽을 만드는 건지. 어쨌든 둘다 말썽이었다. 보안 검색대에서 꺼낸 노트북을 다시 집어넣으려다가 배낭 지퍼 하나가 빠졌다. 배낭에 남아있는 유일한 지퍼였다. 다른 하나는 아침에 목베개를 무리하게 구겨 넣다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세상에. 배낭이 에코백이 된 순간이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가방들이 안쓰러웠다. 가방을 뒤적이다가 끈을 하나 발견했다. 선물 상자 묶듯 가방을 끈으로 단단히 감싸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으로는 이런 돌발 상황을 모두 나 혼자 해결해야겠구나.
제일 큰 걱정은 언어였다.
학교에서 배운 입시용 영어가 전부였다. 그래도 알파벳을 뗀 지 10년 차 아닌가. 나를 조금 믿어보기로 했다. 영어 대신 포르투갈어를 살짝 훑어보았다. 포르투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니 포르투갈어도 함께 알아두면 풍부한 여행이 되리라 생각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구매했던 가이드북을 꺼냈다. 포르투갈 부분만 떼어내 책등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여 나만의 포켓북을 만들어 온 참이었다. 올라 Ola는 안녕, 오브리가다 Obrigada는 감사합니다, 뽈뽀 Polvo는 문어…포르투갈에 가지 않았다면 평생 쓸 일도, 말할 일도 없었을 소리들이 입안에 머물렀다.
포르투갈어를 몇 마디 중얼거리다 보니, 경유지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을 몇 번 읽고, 기내식을 먹고, 자고를 반복하니 어느덧 프랑크푸르트였다. 열네 시간을 날아와 정신이 몽롱했다.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긴장감이 나를 덮쳤다. 입국 심사가 남아 있었다. 질문 몇 개가 전부인 간단한 절차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포르투 땅을 밟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혹시 몰라 여행 기간 중 머물 숙소의 정보와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출력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사전 준비는 다 했다. 드디어 차례가 다가왔다.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어디로 가냐고 잘못 듣고 포르투라고 당당히 외쳤다. 머릿속에 포르투 생각밖에 없었나 보다. 얼마나 머무르냐는 물음에는 트웰브 데이즈라고 답했는데, 아무래도 발음이 이상했던 듯하다. 입국 심사관이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손가락을 하나, 둘 펴서 보여주니 웃으며 도장을 찍어줬다. 따라 웃었다. 웃음 한 번에 긴장감이 녹아내렸다. 아무것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낯선 언어와 함께, 진짜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진짜, 포르투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