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이 될 사람들
인맥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정서적인 관계보단 실질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유대 관계란 느낌이 든다.
실생활에선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 친분 있는 관계들을 인맥이라 하기도 한다.
친분 관계가 결국 실질적 이득을 줄 수 있는 사이가 되기 쉽기 때문에 사전적 정의보다 포괄적인 상황에서 인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다.
'인싸'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사람을 많이 아는 것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꼭 이득을 위해 사람을 사귀는 건 아니지만 인맥 쌓기란 언제 어디서 사람으로 인한 덕을 볼 지 모르는 기대가 섞인 행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런 기대조차 없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설령 그가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에겐 안 받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나의 경우는 한 사람의 기질 자체가 싫어지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한 예를 들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 언제든 나를 안 좋게 말하거나 깎아내릴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내가 없는 줄 알고 나의 행동에 대한 볼멘소리를 하는 걸 들은 경험이 있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흘러나온 그 사람의 말투는 평소 느낌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그런 관계들은 서서히 불편함과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상황 하나만으로는 인간관계에 현타가 오지 않는다.
여러 번 같은 상처가 겹치고 겹쳐 어느 날 한 순간 남들이 볼 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터지고 만다.
나의 성의를 먼저 알아봐주는 사람이었다면 불평보단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자리가 되자마자 그리도 쉽게 던지는 나를 마음껏 탓하던 말투는 마음에 비수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인맥이 욕심나지 않는다.
우연히 실수로 선물 상자를 떨어트려 그 안에 선물이 아닌 흙더미를 발견한 느낌이다.
상자 안에 정말 선물이 들었다면 그 선물이 내가 바라왔던 것이든 아니든,
떨어트려 흠집이 나도 미안함과 아끼는 마음으로 간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애초에 선물이 아닌 흙더미라면 그 상자를 더 갖고 있을 의미가 있을까?
그냥 흙도 아닌 썩어버린 흙이라면 그래도 선물인데 달갑지 않아 하는 내가 정 없는 사람일까?
썩은 흙을 선물로 받았는데 왜 이런 흙을 주느냐 물으면
선물을 주는 사람 의도는 악의가 없는데, 사람마다 주고 싶은 건 다른 거지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성의를 모르며 속 좁은 사람만 되어갈 뿐이다.
이미 시절 인연이 됐거나 나만 놓으면 시절 인연이 될 사이들이 있다.
인맥들이 사라질 때마다 나중에 주변에 사람이 없어 힘들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된다.
그러나 미래의 그 걱정으로 현재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더는 내 마음에 썩은 흙이 든 상자를 둘 곳이 없다.
*사진출처. 네이버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