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끌어안을 때가 가장 강한 때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가 이렇게 매울 줄은 몰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 때문에 속상해본 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어차피 오래 안 볼 사이', '어차피 안 맞으면 안 보면 돼.'에서 해결이 났던 것 같다.
마음을 오래도록 할퀸 건 가까운 사람이 준 상처들이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장점만 있지도 단점만 있지도 않다.
상처받은 일들로 인해 얻은 것들도 있다.
각각 나와 어느 정도의 관계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것.
같은 세월을 보냈다고 마음의 깊이가 다 똑같진 않았다.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함께 기쁨을 느껴주는지,
어떤 사람이 아니꼬워하고 그 안에서도 흠을 잡는지 알게 되었다.
함께 해야 하는 순간일 땐 마음을 숨기고 그냥저냥 관계를 유지하다가
어떤 계기가 있을 때 홀연히 아쉬움도 없이 나를 떠나버릴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이 있든 상관없이 내 옆을 지켜주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다.
일단 알게 된 상태까진 왔다.
그러나 나버린 상처에 초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타인에게 위로를 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인정될 부분은 인정이 되는 순간 가장 강력하고 편안해지는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내게 상처를 준 이들까지 이해가 되며 다 그럴 수 있어하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무언가를 끌어안으려면 한 공간에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마 상처를 받았던 그 순간들도 일단 내게 여유가 없었기 때문도 있지 않을까?
내가 훨씬 더 큰 사람이었다면, (큰 사람이란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 것이다.)
나를 찌르는 것들에 찔리지도, 긁히지도 않고 멀쩡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처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여유 있어질 때 비로소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듯 내가 나의 엄마가 될 수 있다.
엄마란 내 아이에게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그 강한 존재가 나 자신이라면 세상 살아가기 참 든든할 것 같다.
든든한 내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