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감 대신 사랑을

그래요, 사랑이었어요 <12>

by 김동하

부은 편도가 불편해 날을 지새웠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야 잠이 쏟아졌다. 한두 시간 눈을 붙일까도 했지만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상황이 염려되어 이불을 갰다.


아직 기침이 심하진 않지만, 수업에 지장을 초래할까 싶어 사무실 근무가 끝나자마자 가까운 내과에 들렀다. 약을 먹고 나자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져 대낮에 이부자리를 폈다.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을 땐 두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둘째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두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간 날이었다.


작년 이맘때쯤의 우리는 비슷한 통화를 하며 울먹였지만, 이번에는 둘 다 덤덤하게 통화를 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도, 의사의 말을 듣기 전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답변이 돌아왔다. 동생은 새하얀 폐 CT사진만 보고도 의사의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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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월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 생일과 비슷한 날에 태어날 내 딸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고대하는 날이 가까워진다는 건 이제 아버지와의 작별의 순간이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요새 들어 아버지와 꿈속에서 자주 만났다. 투병 생활을 하느라 부쩍 여위어가는 실제와 달리 꿈속의 아버지는 활력이 넘쳤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날이면 이상하게 아버지가 병상을 박차고 일어날 거라는 희망이 들고는 했다. 작년 봄, 아버지의 병명을 확인하면서부터는 늘 최악을 상상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긍정적인 시그널도 크게 느껴지고는 했다.


동생은 올해를 넘기시기 힘들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전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동생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하루 입원해야 한다는 말에 마음 졸이던 어머니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크게 안도하는 눈치였다. 저도 많이 놀랐을 동생은 의사의 말을 에둘러 전하는 와중에도 내 건강을 염려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탓이다. 그런 동생의 전화인데 기침하며 받아 미안했다.


통화를 마치고 내 감정에 너울이 일었으나 작년처럼 파고가 높진 않았다. 최근 한 생물학자가 쓴 책에서 본 글귀가 스쳤다. 인간은 기쁨도 고통도 지속시간이 짧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보통의 감정 상태를 유지하게끔 설계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행복을 큰 강도로 드물게 느끼기보다 작은 강도로 자주 느끼는 게 좋다고 주장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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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너울은 아직 해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물길을 따라 흐르며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따라서 이 파도는 종착지에 닿아 부서지기에는 이르다. 그래서 이런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너울은 유예됐을지 모르나 몸은 그렇지 못한다. 탄수화물이 부족한 것처럼 으슬으슬 떨린다.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서다. 나는 대처법을 모른다.


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얼마나 큰 지지대였던가. 내가 소설가랍시고 근근이 글쓰기를 이어올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아버지 덕분이었다. 가난한 글쟁이로 살아도 가슴만은 당당히 펼 수 있던 건 등 뒤를 떠받쳐주는 손이 있어서였다. 내 뒤에는 부끄러움 없이 살아온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니 나도 부끄러운 인생만 아니면 된다고, 손가락질받을 짓만 안 한다면 당당해도 된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가난이 부끄러움이 된 세상이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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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를 염려하는 아버지 덕분에 나는 나만 생각하면 됐다. 나는 아버지에게 부채감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를 짐으로 느낄 일은 없었다. 우리 부자는 헤어질 때면 입버릇처럼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무렇지도 않다. 걱정 말아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해 왔다. 실은 괜찮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은 날이 적지 않았는데도 우린 서로에게 무던히도 백색 거짓말을 해왔다. 어쩌면 근황이 아닌 바람이었을 인사.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말속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너의 세계를 모른다.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나로 인한 염려를 걷어주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백색 거짓말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나는 이 거짓말들로 며칠을 지새우게 될까.


내게 네 아버지를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이 말한 아버지의 훌륭함은 성실함과 우직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릎이 무쇠여도 몇 번은 닳아졌을 사람이라고, 그렇게 살아 주위를 돌봐온 사람이라고. 아들인 내게는 질책으로도 들렸던 말들이었기에 그 말들을 곡해 없이 받아들이기까지는 제법 긴 세월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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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인정하면서 가슴으로는 끝내 동의하기 싫었던 당신의 성실함. 당신은 평생 이어온 그 성실함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는가. 아버지를 대신해 그 질문을 던져볼 때면 나는 늘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나 때문에, 나로 인해 아버지의 성실함이 퇴색되는 것 같았다.


나는 성실함과 우직함이 영리함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기고는 했다. 아버지가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가 겨우 나라고 생각하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런 생각이 자학적인 꼴사나운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끝맺음이 어려운 글을 말이다.


올해 남은 날 중에 소설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노트북에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띄우고 나면 정돈되지 않은 아버지와 나에 관한 이야기들만 어지럽게 얽히고 만다. 그래서 그 두서없이 뒤섞인 이미지들을 문장화하고 나서야 겨우 맨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작년부터 내 발은 깊지 않은 슬픔의 웅덩이에 잠겨있다. 다만 내려다볼 수 있는 슬픔에 감사하다. 어떤 원망도 없이 순수하게 슬퍼할 수 있는 정신을 선물해 준 당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그러니 당신과 나, 서로를 향한 부채감은 내려놓기를, 걱정하지 말라던 우리의 말들이 방어기제가 아닌 그저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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