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사랑이었어요 <11>
끝내 닿을 수 없던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날이 덥기도 하고 밤이 좋기도 하여 야간 산책을 자주 합니다. 백련제가 있는 연동마을의 밤은 인공불빛이 많지 않습니다. 덕분에 많은 별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 희끗희끗한 구름이 움직일 때면 별들의 항해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야간 산책을 할 때는 별이 아닌 땅을 보고 걸어야 합니다. 산에 폭 안긴 이 마을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는 주로 밤에 모습을 보이는 동물도 많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가 풀숲에 길을 내며 달아나기도 하고 오솔길에서는 두꺼비가 돌처럼 버티고 서있기도 합니다. 가끔 뱀을 볼 때도 있습니다.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단무지처럼 통통한 뱀을 만난 적이 있죠.
도로를 횡단하던 그 뱀은 제 기척에 놀란 나머지 왔던 방향으로 부리나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도로보다 한 뼘 남짓 높은 인도의 턱에 가로막혔죠. 뱀은 어찌나 다급했는지 평소라면 거뜬히 넘을 수 있는 장애물임에도 버벅거렸습니다. 낮은 턱을 넘는 대신 급한 대로 인도와 도로의 경계를 따라 종으로 움직이더군요. 저는 졸지에 뱀과 나란히 걸었습니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만들며 유유히 나아가는 뱀의 움직임은 언제 보아도 유려합니다. 몸통을 물결처럼 만들며 나아가면서도 머리만은 흔들림 없이 앞을 향합니다. 육상선수들이 빠르게 달리면서도 어깨의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민첩하고도 고요한 움직임입니다. 물론 그 움직임이 제게로 향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요.
한 번 뿐이긴 하지만 이 아름다운 뱀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일인데 당시 전 교회에 다녔고 뱀이 사탄의 화신이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설교에 감화받은 건 아니지만 무의식 중에 뱀을 혐오하게 됐나 봅니다. 도랑에서 만난 뱀을 죽이고 말았죠.
지금의 전 무신론자이지만 한때 성경을 공부했던 탓인지 여전히 뱀을 보면 창세기가 생각납니다. 에덴동산의 뱀이 생각납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게 유혹한 존재가 뱀이었지요. 뱀은 목소리가 없어 속삭임이 됐습니다. 갈라진 혀로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악마의 속삭임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죠.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뱀보다 죽어있는 뱀을 볼 때가 더 많았습니다. 도로에 납작하게 눌린, 로드킬 당한 뱀 말입니다. 그렇게 죽은 뱀들은 대개 똬리를 틀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 형태가 일종의 기호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전 그 기호를 해독할 수 없습니다. 그 의미를 모릅니다. 다만 뫼비우스의 띠로도, 매듭으로도 보이는 그 형태가 더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뿐입니다.
저는 모르겠다는 말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특정 공구의 이름을 말하며 가져오라고 시킬 때면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유추하여 찾아오고는 했습니다. 공구의 종류는 워낙 다양했기에 제 유추는 틀릴 때가 많았지요.
모르는 게 공구들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알기 힘든 건 마음이었습니다. 모른다고 야단을 맞고 자리지도 않았는데 왜 모른다고 말하기가 그렇게나 어려웠던 걸까요. 어쩌면 전 모른다는 말이 하기 싫어 책을 읽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마음 중에는 제 마음도 있었겠지요.
나이를 더 먹으면 모르겠다고 말할 일이 줄어들까요. 이렇게 날 좋은 밤이면 별들이 손에 닿을 듯합니다. 그러나 한 뼘도 되지 않는 저 별들의 간격이 실은 평생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닿을 수 없는 거리임을 압니다. 마치 당신과 나의 거리처럼 말입니다. 마주 본 우린 손을 뻗으면 서로를 만질 수도 있었지만 끝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신들이 참 많았습니다.
뱀과 나란히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해야 하는 상황들이 늘어간다는 건 그만큼 외로워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몰라요가 나를 향한 당신의 몰라요 될까 겁이 나 부단히 아는 척을 했던 건 아닐지 말입니다.
하나둘 닿을 수 없는 당신들이 늘어간다는 건 진실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습니다. 이 명징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신 독해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끝을, 우정의 끝을 인정하는 건 죽은 뱀의 기호를 읽는 것만큼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그 자리에 두고 왔나 봅니다. 어떤 마음들은 그날, 그 시간에 뱀이 남긴 기호처럼 말라 있습니다.
저와 나란히 걷던 뱀은 제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전진을 멈추고 턱을 넘었습니다. 왜일까요.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에게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건. 뱀의 독보다 말의 독이 무서운 건. 뱀은 목소리가 없어 속삭임이 됐습니다. 우린 말이 있어 말을 듣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