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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May 14. 2019

4월 영화메모

어벤져스:엔드게임, 나는 반대한다, 더 길티, 미성년

어벤져스 : 엔드 게임

방대했던 서사를 대중적으로 영리하게 마무리짓는 방식이었다. 최근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크게 벌린 판을 수습하는 용도로 자주 사용하는 타임리프 설정을 어벤져스도 피해가지 못하는구나 싶긴 했지만.


일반적인 타임리프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과거에 일으킨 변화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정인데, 이로 인해 갈라져가는 평행세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무척 편의적이랄 수 있겠다. 어찌되었든 잔뜩 복잡해져버린 이야기를 큰 부담없이 끝맺으면서도, 관객들이 함께 과거를 추억하게 하고, 그간 쌓아놓은 중요 서사들을 일일이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영리한 선택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어벤져스 원년 멤버들과의 마지막 인사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지는데, 특히 위험성 높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기반을 세우고 든든한 중심축이 되어주었던 아이언맨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어떤 면에선 아이언맨 캐릭터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배우에 대한 헌사로 느껴지기도 한다. 공로상 수여식 같은 느낌?) 정신적 측면에서 어벤져스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캡틴 아메리카 역시 평범한 삶과 휴식이라는 꽃다발을 수여받은 채 품위있는 모습으로 퇴장한다. 이 정도면 페이즈 1을 마무리하면서 해야 할 몫은 최대한 해내고 가는 셈이다.


유사한 설정을 활용한 엑스맨 시리즈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비하자면 좀 아쉬우나 오랜 시간동안 마블 시리즈를 함께 쫓아온 관객으로선 특별한 감회가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는 것만해도 이미 어느 정도 성공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고. 물론 나의 최애 토르 캐릭터를 생각하면 살짝 울화통이 치미긴 한다만. 이대로 하차는 아닐거라 믿고 있기에 일단은 납득하고 있다. 그래도 너는 잘생겼어, 토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사회의 아이콘이 된 미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영화였는데 드디어 보았다. 평이한 구성의 다큐이지만 워낙에 흥미롭고 멋있는 인물을 다루고 있어 만족감이 높았다. 게다가 부러울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센스있는 남편 마티에 대한 감탄까지.


그녀의 위대함과는 별개로 그런 그녀가 아이콘화되고 소비되는 방식이 진지하기 그지 없는 그녀 자신의 성향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그런 불일치가 외려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나저나 그 연세에도 여전히 일과 자기 관리에 열정적이신 모습을 보니 나의 게으름이 또 한번 찔리더라. 아, 진짜 계속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더 길티

<폰 부스>, <베리드>, <로크> 같은 영화와 한 궤를 이루는 영화로 한정된 공간과 실시간의 압박을 동력삼아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여기에 주인공이 지닌 죄의식을 서브 플롯으로 더하며 심리적인 압박감을 배가한다.


오직 전화를 통해서 들려오는 단편적인 단서들만이 주어지지만 주인공은 확신을 가지고 대응해 간다. 그러나 정확할 것이라 믿었던 그의 판단은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거나 사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헛짚는 등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에서 결국 미끄러지고 만다. 최선이라 생각했던 그의 판단들이 만들어낸 비극 앞에 우리는 그저 함께 황망해 할 수 밖에 없다.


미성년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곤 할 수 없지만 관람 만족도에서만큼은 이 영화를 베스트로 꼽고 싶다. 배우 김윤석이 감독을 맡은 작품이라 들었을 때 기대 혹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영화다. 극에서의 비중이나 역할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남성 캐릭터를 배제하고 축소하면서 영화는 최대한 네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자신이 연기한 대원 캐릭터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그 현실적인 찌질함의 수준이 가히 홍상수 영화의 그들 못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예상일 뿐이지만 시나리오 작업할 때나 연기할 때 김윤석 본인이 낄낄대면서 이 캐릭터를 주도적으로 망가뜨리지 않았을까 싶다.


불륜과 혼외임신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며 얼핏 뻔해질 수 있었던 감정선들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옮겨간 시선 속에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낸다. 특히 어른 세계의 찌질함에 대조되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미성년 소녀들의 뒤끝없는 화끈함과 발 빼지 않는 책임감은 감동과 동시에 속시원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일부러 극의 톤을 가라앉히지 않은 신인감독다운 패기가 시종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완벽하게 짜여지고 정리된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파닥파닥 숨을 쉬며 살아있었기에 만족스러웠던 작품. (나는 심지어 이 영화를 보면서 두어 번 발작적으로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떤 순간이나 대사가 만들어내는 감정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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