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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Apr 23. 2019

문외한으로 즐기기

퍼펙트 게임(2011)

남자친구와 나는 꽤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에 까막눈인 나와 달리 그는 선수들의 프로필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특히 해외축구, 국내야구) 마니아이며, 굳이 같은 영화를 왜 다시보나,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한 편 더보지-라는 나의 영화관람철학(?)과 달리 그는 같은 영화를 수십번씩 반복하며 장면과 대사까지 암기하는 남자다. (심지어 성대모사에 상당히 재능이 있어서 컨디션이 좋을때면 몇몇 장면들을 실제 배우들 목소리를 모사해가며 그대로 재현해주기도 한다.)


그의 관심사에 영향을 받아 최근엔 나도 자연스럽게 야구 경기를 옆에서 함께 시청하곤 했는데, 워낙에 복잡한 스포츠다보니 여전히 나는 뭐가 뭔지 잘 알아먹질 못한다. 얼마 전에도 "그래서, 안타가 뭐라고?"라는 시덥잖은 질문을 했고 남자친구는 마치 처음인양 또 친절히 설명해 줬었다. 아무리 들어도 나는 야구가 너무 어렵다. 용어도 너무 많고 규칙도 복잡해. 게다가 워낙에 친절한 해설자가 옆에 있기 때문에 딱히 학습 의지가 안생기는 탓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나의 야구 지식은 이 수준에 머물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나 문외한인 것 치고는 지금껏 나도 적지 않은 야구 관련 컨텐츠를 즐겨왔는데, 일단 아다치 미츠루의 <H2>같은 만화를 재밌게 봤고,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영화 중 하나가 <머니볼>이기도 하다. 야구팬인 친구가 선물해 준 서효인 작가의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라는 에세이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심지어 <너클볼>이라는 야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남자친구는 '얘가 대체 너클볼이란 단어는 어디서 들은거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만도 하지. 안타도 모르는데.


아무튼 이렇게 깔짝깔짝 야구 경기를 보고 야구 이야기를 즐기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야구는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일단 발을 들이면 빠져 나가기 어려운 매력이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유독 인생과 많이 비유되는 것도 그럴 법 한게, 워낙 룰이 많고 정교하다보니 이런저런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인생사에 비유할 건덕지가 많아지는 것 아닌가 싶다.



얼마전에 <퍼펙트 게임>이라는 영화를 찾아봤다. 전설적인 라이벌이라는 최동원과 선동열 이야기라길래 나도 최근엔 야구 경기 몇개는 봤었으니 예전보단 즐길 수 있겠지 싶어져서. 그러나 대한민국 야구사와 두 선수의 히스토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보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느낄 수 있는 재미에는 한계가 있더라. 영화를 보고 찾아본 몇몇 감상평에서 피칭폼이 어쩌구, 경기내용 재현이 저쩌구 하는 내용을 보고있자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그러나 뭣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나름대로 즐길 만은 했다. 재능을 타고난 여유로운 천재와 성실과 끈기로 무장한 천재라는 두 상반된 타입간의 대결구도는 클래식하지만 역시나 매력적이니까. 전형적인 감동 코드 연출을 위해 몇몇 캐릭터를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특히나 도무지 왜 등장해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최정원의 기자 캐릭터를 보며 짜증이 치솟기도 했지만, 적어도 최동원이라는 캐릭터에만큼은 애정과 존경이 느껴지기도 했다. 명확한 승패보다 훨씬 더 긴 여운을 남기는 '무승부'라는 결과가 주는 감동도 무시할 수 없고.


에, 아무튼,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야구의 세계 변방에서 깔짝깔짝 즐길 거리를 찾아볼 예정이라는 것, 정도를 이 글을 결론이랄 수 있겠다. 이러다 어느날 외국어에 귀 트이듯 야구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마 한자릿수에 미치기에도 간당간당하지 않을까 싶고, 그냥 이렇게 맘편한 문외한인채로 계속 단물만 좀 즐겨보려 한다. 하하.(과거 LG팬이었던 남자친구의 사례를 보아하니 팬심을 가지는 건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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