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 May 23. 2019

고슴도치의 소원(톰 텔레헨)

책기록#1

 “망설이는 거. 나는 망설이고 싶지 않아. 그런데 망설여야만 해.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길 원하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지 망설여져. 뭔가를 먹고 나면, 계속 먹을지 망설여. 그리고 잠에서 깨면, 일어나야 하는지도 망설여. 나는 모든 것을 망설여. 이상해.”
아무도 초대 안 해. 고슴도치는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그게 현명한거야.
그는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계속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더 외로워질까? 지금보다 더?
더 깊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락까지 떨어지는 걸 상상했다. 몸이 빙글빙글 돌고 가시가 꼿꼿하게 솟았다.
외로움은 내가 그렇게 되길 원하는 걸까?
고슴도치는 외로움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가끔 어둠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지면 그는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러면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목청을 가다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나한테 좀 알려 줄 수 없어?" 고슴도치가 속삭이듯 물었다.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목청을 가다듬는 것 같았다.
외로움이 내는 소리야.
고슴도치는 침대 옆에 선 채, 외로움이 갑자기 사라지고 동물 모두가 집안으로 밀려오는 상상을 했다. 누군가 하나라도 문을 열고 들어오고 외로움이 그 틈으로 빠져나가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지나치게 다정하고 친절한 누군가. 항상 너도밤나무꽃 꿀을 가져오는 누군가.
그러면 둘을 함께 차를 마실 것이다. 무슨 이야기든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금방 잊어버릴 여행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둘은 함께 밖을 바라보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광경도 함께 볼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청을 가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누구야?"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외로움."
"여기 살아?"
"글쎄, 여기 사나……. 그냥 여기 있어. 오기도 하고, 가기고 하고."
"아."
차를 다 마시지도 않았고 뭔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도 아직 하지 못했겠지만, 둘은 문득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 느낌은 뭐지?" 누군가는 당황해서 물을 것이다.
"내 외로움." 고슴도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날이 어두워진다. 누군가는 조용히 떠날 것이다. 외로움은 머물 것이다.


톤 텔레헨의 <고슴도치의 소원>은 외로움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동화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고슴도치는 사무치도록 외로우면서도 쉽게 남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고슴도치는 홀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데 누굴 초대해야 할까, 초대했는데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초대한 친구들에게 뭘 대접해야 하지, 무슨 이야길 나눌 수 있을까, 혹시 친구들이 실망하면 어쩌지, 내가 직접 찾아가는 건 어떨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에 고슴도치는 선뜻 용기내어 손을 내밀지 못하고, 고민이 깊어질수록 홀로 남은 외로움도 커져만 간다. 한 마디의 용기가 수십 키로의 무게보다 버겁고 무거운 누군가를 위한 아주 특별한 동화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답답하게만 느껴질 이야기이기도. (2019.01.09)


작가의 이전글 19.05.12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