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지만 낯설지 않았던 하루
5월 중순의 두바이는 이미 여름이었다. 바람은 뜨겁고, 공기에는 습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낮이면 숨이 턱 막히는 더위가 도시를 감쌌고, 밤이 되어도 온도는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출장 일정으로 다시 찾은 두바이였지만, 그 날씨는 여전히 나를 압도했다.
데이라(Deira)의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나니, 마음에 작은 틈이 생겼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워.” 출장이 끝나고도 하루를 더 머무르기로 했다. 딱 하루. 그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낮에는 두바이 올드 수크(Old Souk)를 다시 찾았다. 오래전 첫 해외 파견지였던 이 도시의 첫 기억도 이 시장에서 시작되었었다. 골목마다 자리한 향신료 가게, 두꺼운 황금 목걸이를 잔뜩 걸어둔 금방들, 천장에서 늘어지는 화려한 패브릭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낯섦의 밀도는 여전했다. 상인들은 여전히 능청스럽고, 거리엔 땀에 젖은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했다.
시장 끝자락, 내가 예전에도 자주 들렀던 작은 찻집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정한 아저씨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의 얼굴에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시원한 민트티를 마시며 시장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빠르게 걸었고, 내 마음은 천천히 흘렀다.
저녁이 되어 마디낫 주메이라(Madinat Jumeirah) 근처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바깥 테라스로 나가자, 저 멀리 부르 알 아랍(Burj Al Arab)의 실루엣이 돛단배처럼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도시의 화려한 상징, 그 곁에 앉아 나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바다 바람이 습기와 함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내 마음에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아, 이제 좀 괜찮다.”
정확히 무엇이 괜찮아졌는지는 몰랐다. 다만 마음 한 켠의 짐이 조금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두바이 크릭(Dubai Creek)을 가로지르는 작은 나룻배, '아브라(Abra)'를 탔다. 맨 처음 이 배를 탈 땐 긴장으로 손에 땀이 났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익숙함과 그리움이 섞인 설렘이 가슴을 채웠다. 뺨을 스치는 바람과 물비린내, 그리고 엔진 소리. 아무 말 없이 그 감각들을 그냥 받아들였다.
배에서 내려 돌아가는 길엔, 일부러 예전에 가던 드라이브 스루 스타벅스 지점을 찾아갔다. 두바이 알와슬(Al Wasl) 지역의 한적한 도로 옆, 차를 세우고 창을 내리자 익숙한 주문 창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차 안에서 커피를 받아 들고, 조용한 해변으로 향했다.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끝자락의 비치였고, 저 멀리 부르 알 아랍이 여전히 제자리에서 찬란했다.
그늘 하나 없는 백사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완전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일부러 '바칼라(Baqala)'에 들렀다. 화려한 쇼핑몰 대신 동네 슈퍼마켓. 다국적 브랜드 대신 손때 묻은 진열대. 냉장고 문을 열자 오렌지색 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도 이거 자주 마셨지..." 무의식처럼 병을 하나 꺼내 들고, 그대로 바칼라 앞 그늘에 앉아 천천히 마셨다.
차가운 오렌지 주스가 입안에서 퍼졌다. 약간 덜 익은 과일의 신맛, 그리고 오래된 냉장고에서 나온 듯한 그 미묘한 냄새.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오랜만에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하루. 누구의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되었고,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혼자였지만, 낯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도시의 온도와 냄새, 리듬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5월의 두바이. 습기 가득한 공기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말라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도시에서, 나는 다시 나와 연결되었다.
혹시 당신도, 아무도 모르는 도시 한켠에서 나를 만나는 여행을 꿈꾸고 있나요?
오늘 하루, 마음의 에어컨을 끄고 그 낯선 습기를 한번 들이마셔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