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75, 18평 오래된 아파트가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따지자면 보증금 천만 원이 제가 가진 전부겠네요. 제가 마련한 이 집에 4인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삼 남매. 적지 않은 나이라 대부분이 독립하는 시기에 좁은 집에서 왜 함께 사는지 의문이 들겠지만 놀랍게도 저희는 본가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건 보증금 천만 원이 전부입니다. 외가와 친가 모두 어떠한 교류도 없기에 여러모로 독립된 가정입니다.
중학교 시절까진 친할머니댁에서 살다가 그 이후로 돈 한 푼 없이 나와서 삼 남매는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에, 어머니는 싼 월세방에서 살았습니다. 독립 아닌 독립이었죠. 그 후로 3년 전까지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첫째와, 둘째인 저는 운이 좋게도 그 당시에 신청한 LH에 선발되어서 시세보다 싸게 월세방을 구했습니다.) 몇 년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이 아파트에 오게 된 것이었죠.
함께 사는 공간에 혼자 보증금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은 제 꿈이었으니까요. 함께 살 수 있다면 좁은 집도 괜찮다며 이 집으로 계약했지만 생각만큼 마냥 행복하진 않더군요. 물론 마냥 불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독도 되고, 득도 되면서 아직까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다시피 보통의 가정과는 달라서 우리 집만의 룰이 존재하는데요. 보증금의 지분에 따라 방의 크기가 정해집니다. (어머니도 동의하셨고 불효자들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큰 방, 군대에서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살림에 보탠 셋째가 작은 방을 선점하였습니다. 지금은 여러 이유로 두 방을 세 명이 요리조리 사용하고 있지만 큰 방은 여전히 제 방으로 끄떡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재산도 없고 빚밖에 없는, 가진 거라곤 제가 모은 천만 원이 전부인 우리 가족은 남들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으로 따지면 턱없이 모자라고 불행한 게 맞습니다. 실제로 힘든 시기도 길었고 지금도 거쳐 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요. 근데 늘 그렇진 않더라고요. 산다기보단 버티는 삶에 가까웠지만 참 많이 웃고 살았습니다. 불행한 와중에도 더 불행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그래,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라며 서로 깔깔대고 웃기도 합니다. 그때는 웃길 게 전혀 없었던 일인데 이렇게 웃음도 나오는 거 보면 과거는 미화가 되는 게 맞나 봅니다. 불행한 와중에도 마냥 그렇진 않은 것이 인생일까요. 그렇다면 행복한 와중에도 마냥 그렇지도 않은 것 또한 인생이겠습니다.
불행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하지 아니하다.'이지만 어쩐지 제가 느끼는 불행은 삶이 흔들리는 기분입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불행한 게 아닌데 말이죠.
남들이 보기엔 우리 가족은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불행해도 마땅한 삶이겠지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삶도 살아는 집니다. 남들이 행복이라 느끼지 않는 곳에 분명 우리만의 행복이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충분히 느끼며, 미래를 꿈꾸기도 하면서 그렇게 네 식구가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