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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되면

by 엄지사진관

6살? 7살? 부터인가 여름이 시작되면

할머니가 싸준 반찬과 장어국을 흰 아이스박스에 담아

옅은 핑크색 보자기로 잘 싼 뒤

무겁지만 무겁지 않은 내색을 하고

마산역으로 향했다.


나의 손에는 영등포행 기차표와 삼천원이 쥐어졌다.

동대구역을 지나면 바나나 우유 하나,

대전역을 지나면 또 하나. 남은 천원은 비상용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

영등포역에 도착을 했다.


영등포 역에서 내려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까지

항상 아버지가 한 말을 기억했다


"최대한 촌년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고 당당히 걸어 간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절대 믿지 마라. 내려서 사람 많은 곳으로 무조건 따라가라"


세 가지 말을 곱씹으며 플랫폼을 빠져 나간다.

그리고 플랫폼 끝에는 항상 고모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면

서울에 도착했다는 설렘

플랫폼을 바져나가야한다는 두려움

고모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


어렸던 나에겐 심장이 터질듯한 순간이었다.

부모님도 대단하지

.

.

.

.

나의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겨울방학이 되면

한국지리 선생님인 엄마의 다음 년도의 수업자료를 찍으러

큰 배낭에 필름을 잔뜩 넣고, 지도를 들고 떠났다.


어렸던 나에게 겨울 여행은 쉽지 않았다.

흐릿한 풍경

사람이 없는 고요함

사찰에 가면 적막함 속에 부는 바람 소리

5시만 되면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어둑함까지


"엄마는 왜 수업자료를 겨울 방학에만 찍어요?"

"응. 풍경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없잖아."


명쾌한 엄마의 답에

할 말은 없었지만

지도 하나 들고 여행을 다녔던

어린날의 기억은 잊히면서도, 잊히지 않는다.


추웠다.

그 추위 속에도 어떻게든

더 많은 세상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