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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Feb 21. 2018

그래서 나는 괜찮은 후배였나?

오랜만에 신입사원 일기에 소재를 제공해주는 제공자가 나타났다. 사실 6개월 동안 함께 하면서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거라 쓰지 못했는데. 수 많은 고민거리를 일기장에 쓰지 않으면 마음에 병일 날 것 같다.

이제 갓 5년 차인 나는 팀에서 막내이다. 연차는 싸여가지만 연차가 낮을 때는 선배 눈치를 보다 연차가 쌓이니 후배 눈치를 보는 위치가 되었다. 중간급.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리고 성과는 슬슬 내야 하는 그런 자리이다. 회사에서 우리 팀에 정직원으로 채용한 후배는 아직 없다. 6개월씩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아르바이트생이 후배이다. 처음에 후배가 들어올 때는 잘해줘야지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오가는 커뮤니케이션 상에서 미스가 나기도 하고 몇몇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 애들'이라는 무서운 말

회사는 20대, 30대, 40대, 50대 엄청 많은 세대가 공존을 하고 있다. 아무리 젊게 생각한다고 해도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요즘 애들 왜 저러니~ 요즘 애들 왜 저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조차도 그런 말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동생과 나는 12살 차이이다. 후배들이 들어와도 내 동생보다는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곤 한다. 동생과도 나이 터울이 있어 소통이 잘 안되는데 회사에서 만난 후배라고 더 소통이 될까. 

뭐 하나 말하자니 꼰대 같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답답하다. 인턴으로 들어온 친구에게 뭐 대단한 것을 시키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건 어불성설이다. 인턴으로 들어온 친구는 자기가 해야 하는 그만큼만 성실히 하면 된다. 우리 회사는 야근도 없다. 18시 이후 인턴 친구 근무를 시키는 것은 선배들도 싫어한다. 그 시간에 영어공부나 영화를 보던가 등등 저녁 시간을 즐기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보다 더 좋은데 갈 수 있으니 많은 것을 보고,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길 권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매너는

문제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회사생활에서 '인사'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팀 선배에게 인사조차 잘 하지 않는 후배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고 있는 업무에 관심조차 없는 후배에게 이런 이런 것을 해보거나 아이디어를 내라고 제안을 할 수 있을까? 같은 것을 여러 번 틀린다. 처음, 두 번은 실수할 수 있다. 틀리지 말라고 틀린 것을 포스트잇에 붙여 놓고 실수를 줄이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세 번.. 네 번.. 다섯 번.. 같은 것을 틀리면 그건 그냥 관심이 없다고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배는 나의 태도를 지적했다. 굳이 그렇게 다그치면서 말해야 하냐고 당당하게 말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는 동생이었으면 욕을 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지만 일단 말이 심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업무를 지시를 할 때 높임말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 어떤 말투가 문제란 말이지? 한두 번 틀리면 가르쳐주고 실수를 고쳐나가면 되는데 반복해서 똑같은 걸 몇 번이나 틀리는 후배에게 좋은 말투로 고치라고 하는 건 내가 아직 깜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업무 특성상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에는 정답은 없지만 고민한 흑적을 보여야 하는데 임시방편이었다. 회의에 들어올 때는 간단한 메모장이라도 들고 오면 좋다고 말해줬다. 그냥 그뿐이었다. 하나둘 그냥 그뿐인 게 많았다.

내가 싫으면 상대방도 나를 싫어한다. 그건 유치원생도 아는 감정이다. 결국 우린 가식을 떨어야 했다. 회사니까, 일을 해야 하니까. 선배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후배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니. 내가 회사생활을 잘 못하나 싶었다.

굳이 마음에 있던 말을 꺼낼 필요가 없다.

난 사람이 싫으면 끝.이다. 한번 아니면 아니다. 그런데 이 논리를. 이 감정을 회사생활에 적용을 한다면 참 철이 없는 행동이었다. 후배의 행동을 다른 선배들도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는 눈웃음이나 치면서 알겠다고 하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말을 하면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거나, 딴생각을 하거나, 눈꼬리를 치겨올리며 말했다. 선배들은 내게 말했다. 나와 맞지 않는 후배가 들어왔더라도 후배는 6개월만 하고 나가는 사람인데 그 시간만큼은 잘 버텨보라고, 후배에게 하는 행동에서 인품이 나온다고. 그런 말도 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에서 그 사람에 인품이 나온다고.

내 인품은 쓰레기 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굳이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업무에 관심조차 없고 그저 시간 때우러 오는 후배를 이 끌고 무언가 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인턴은 23살,24살쯤에 나이인데. 6개월 후 우리 회사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서 사회생활을 하기를 늘 바랬다. 아직 젊고, 무언가를 많이 선택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다른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 더 나은 시너지를 가지고 가길 바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옆에 선배가 말한다.
"엄지야, 사람 안 변한다"
그랬다. 
넌 너였고, 난 나였다. 

선배가 아무리 지랄을 해봤자, 후배는 생각한다. 똥개야 짖어라.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 때문에 에너지를 쏟고, 가식적으로 지낸다는 건 나에게 더 스트레스를 준다는 걸 느낀 몇 개월.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더욱더 지켜야 할 것 중 하나는 감정 표현일 것 같다. 근데 난 그게 제일 어렵다. 꼰다 해도 좋으니 최소한 매너 좀 갖췄으면. 산 넘어 산이구먼. 좋은 선배들이 이렇게 많은데 좋은 선배가 되어가는 건 힘들다는 걸 느꼈다. 아니 어쩜 지난 회사에서 말 안 듣던 후배라 벌받았는지도. 매너 없는 사람은 다시는 안 만났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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