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23년은 1월부터 x같다 생각했는데
12월까지도 그렇게 흘러갈 거란 생각을 못 했다.
언젠가 정리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지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정리해 보는 23년.
일 년 삼백육 심 오일을 다 기억하면서 살아가지 않지만, 그리고 삼백육십오일이 매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만큼 특별한 날은 아니었지만 하루 이틀쯤은 괜스레 들뜬 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눈이 펑펑 내려 달려간 곳에 멍 때리며 커피 마신 날. 이월에는 무조건 간다며 필름 카메라 하나 들고 갔던 홋카이도. 친구 따라 강남 아닌 호주 간 날. 매년 돌아오는 봄이지만 올해는 또 다른 장소들이 새롭게 보인 순간. 촬영 장소에서 친한 작가들 마주치는 순간. 풋살에서 어시스트 기록하는 순간. 우도에서 캠핑한 날 아침 돌고래 봤을 때. 무슨 또 신기한 보드게임 알아서 잠 못 들던 순간. 스튜디오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노을 봤을 때. 잊지 못할 여름 남프랑스. 가보고 싶던 오스트리아. 생일선물로 받았던 코로나. 독일에서 렌터카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까지 달려 캠핑카 여행했던 순간, 발리에서 인생 첫 스노클링. 길리에서 밖에 안 나가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 마스크 걸 정주행. 발리에서 느낀 지진. 항공 중이염 터졌던 순간. 내가 매번 먼저 연락했는데 먼저 너한테 연락 왔던 날. 누군가의 퇴근시간에 맞춰 데리러 간 날. 별거 아닌데 웃게 되고, 만나면 시간이 빨리지나 아쉬운 날. 짱 박혀서 보정해야 했지만 포근했던 이도동아요집.
외로움을 잘 느끼지는 않는 편이지만, 내게 시간을 '내서' 보러 오는 사람과 시간이 '나서'보러 오는 사람은 나의 인생에 있어 전혀 다른 분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뼈 때리게 느낀 날이다. 분명 거리를 두고, 선을 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 애쓴다. 가 한심할 때도 있다. 결국 내가 연타 올 때는 일이 바쁘지 않을 때, 그리고 내가 마음을 쓴 사람에게 돌아오는 마음이라는 것을 느낀다. 아니 서른일곱이나 처먹고 관계에 또 이렇게 애쓰다니 참
제주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에 올라와 다시 시작하려고 했던 야심 찼던 계획은 생각보다 촘촘하지 못해 미뤄지고 있다. 사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사는 게 나이가 들어서 뭔가 재미있는 빅 이벤트의 연속일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안다. 무뎌진다는 것을. 호기심은 없어진다는 것을. 22년이 너무 강렬했기에 23년의 반짝임이 조금 덜 보이는 것뿐이지, 안 반짝이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은 내가 생각하는 데로, 말하는 대로 흘러간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은 나를 갉아먹을 분이니까
시간이 지나 순간의 감정들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신은 공평해 돌아보면 인간의 기억은 미화시키니까.
삼재도 아닌데 삼재 갔았던 23년.
무해하게 곁에 있어 준 것들에 감사하며.
이 긴 글을 누군가 다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읽으신 분도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