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와 양극단화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특히 탄핵이 잦은 국가이다.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에선 탄핵이 3번이나 시도되었고 2번이 가결되었다. 탄핵뿐 아니라 전 대통령에 대한 적폐청산 명목의 수사는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연례행사 수준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수준 높은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동시에 상대편에 대한 만연한 혐오가 깃들어있다. 어떻게 대한민국에는 혐오정치가 깃들었고 어떻게 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한민국 정치의 근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서구의 정당은 대체적으로 노동 VS자본, 보수 VS진보와 같은 이념적 대립을 표방하고 실제로 지지층들 또한 해당 진영에 따라 나뉜다. 물론 대한민국도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이 있지만 2026년 현재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 모두 정치 스펙트럼 상 보수로 분류되고 진보를 표방하는 야당들의 힘은 상당히 약하다. 대한민국 정당정치는 이념보다 지역과 인물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매우 크다. 경상도와 전라도로 대표되는 지역갈등과 팬덤정치라 불리는 유력 대선후보들의 정치적 신망과 인지도가 정당들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해관계가 대립되다 보니 대선과 총선마다 정권심판 및 정권수호로 각 정당들은 대립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행정권이 강한 편이기에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장차관 급 인사들이 대거 물갈이되고 인사 및 정책 방향성이 전면적으로 바뀐다. 이는 정당들에게 생존이 직결된 문제가 되어 선거가 경쟁이 아닌 적대적 양상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매번 대통령이 바뀌고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남발도 이러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이다. 선거는 더 이상 정책 경쟁이 아닌 상대 후보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도덕심판의 양상을 띠며 상대후보는 ’다른 사람‘이아니라 ‘틀린 사람‘으로 깎아내린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과 급격한 사회변화에서 기인한다. 식민지부터 625전쟁, 민주화까지 다른 국가들에선 여러 세대에 거쳐 천천히 진행되었을 변화가 대한민국에선 50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한 세대)내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충분한 시대적 여유가 없었고 과거 적폐와 문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사회에 깃들어있는 채로 발전만을 거듭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디지털 강국답게 전 국민이 유튜브 등 핸드폰을 통해 쉽게 본인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능동적 정보접근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하나 동시에 확증편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에코체임버효과). 본인의 정치사상과 같은 채널만을 접하고 상대에 대한 비방을 지속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정치적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양극화와 혐오정치는 더 이상 관념적 이상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다. 근본적인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1987년 9차 개헌 이후 40년째 구체제적 양상을 띠고 있다. 발전한 사회와 시민의식에 맞춰 개헌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의 원론적 반대를 벗어나 서로 대국적인 양보를 할 수 있는 건설적 토의가 필요하다. 개헌을 한다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대선이다. 5년에 한 번 치러지는 대선을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방안은 현시점에서 충분히 검토할만한 사항이다. 총선과 대선을 같은 주기로 맞추어 선거에 들어가는 사회적 자본을 절약할 수 있고 5년마다 반복되는 전 정부 적폐청산을 국민들이 직접 다시 뽑거나, 상대 후보를 뽑아 심판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중임제로 레임덕을 방지하여 행정부의 정치적 약화를 방지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독재에 민감한 국민정서상 충분한 설득과 설명이 필요할 것이며 중임제로 바뀌기 전 대통령이 대의적 차원에서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되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전 국민의 정보 습득력이 유례없이 높은 현시점에서 출처 없는 가짜뉴스는 사회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가짜뉴스에서 비롯되는 음모론과 비방은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반지성주의이다.
물론 극단주의와 혐오정치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시민들의 열린 눈과 귀로 닫힌 사회가 아닌 열린 사회를 만들어야만 대한민국 정치에 만연한 악의 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