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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구 Jul 25. 2021

여성 고딕 문학에 나타난 집과 여성의 관계

완전한 행복과 힐 하우스의 유령 속 여성과 집의 관계

출처 : unsplash

   유나가 시골집에서 오리 먹이를 다듬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완전한 행복」은 시작된다. 시골집은 유나가 과거 조부모와 함께 머물던 장소로, 타의에 의해 일시적으로 머물러야 했던 임시적 공간이자 원가족과의 분리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과거의 유산이다.


   유나의 어머니가 신부전 말기 진단을 받았을 무렵, 유나의 아버지는 막 사업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두 아이(재인과 유나)의 뒷바라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부모는 결국 어린 유나를 시골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이후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유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집까지 빼앗아 간 언니 재인에게 맹렬한 증오를 표출한다. 이때부터 유나에게 완전한 행복이란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집'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유일한 소망이 되었다.


"네가 내 걸 다 훔쳐갔으니까. 엄마, 아빠, 우리 집까지 독차지했잖아."

p.159, 「완전한 행복」


   그릇된 소망을 갖고 자라난 유나는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은호와의 결혼을 계기로 가족과 집을 향한 자신의 집착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한다. 유나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에도 은호를 압박한다.


"딱 내가 원하는 집이야."
아내는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선 턱없이 비쌌다. 전세를 빼고, 적금을 털고, 대출을 끼어도 어림없는 액수였다. 입주 시기도 너무 늦었다. 이듬해 6월이었으니 반년 이상 남은 셈이었다.
 
p.114, 「완전한 행복」


   유나에게 행복이란 과거 자신이 재인에게 빼앗겼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부모와 유나, 그리고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현재의 유나와 은호, 지유와 '집'을 대신 위치시키려는 시도에 다름없다.


입주를 하고도 그는 노아를 데려올 수 없었다. 아내는 두 아이를 같은 날 함께 데려오길 원했다. 데려올 때 두 아이가 같은 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결합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아내는 그의 거절을 거절했다.
 
p.115, 「완전한 행복」


출처 : unsplash

    「힐 하우스의 유령」은 몬터규 박사가 초자연현상 연구를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으로 시작된다. 초대를 받은 이들 중 엘리너 밴스라는 여성은 과거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경험했던 이력으로 몬터규 박사의 선택을 받게 되는데,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피로와 죄책감, 그리고 원가족 내부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오며 경험한 치욕을 씻어내는 유일한 저항의 선택지로서 힐 하우스를 택하는 인물이다.


   엘리너는 가족들에 의해 자신의 공간을 박탈당한 여성으로, 그에게 집은 오직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들-신경질적인 노모를 의자에서 들어 올려 침대에 누이거나, 수프가 담긴 쟁반을 끝도 없이 나르거나, 지저분한 빨랫감을 직면하는 일-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엘리너에게 힐 하우스로의 초대장은 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의 여정이자 기회로 여겨진다. 엘리너의 이러한 기대는 힐 하우스로 향하는 길에서 잘 드러난다.


이스트 배링턴이나 데즈먼드나 버크의 자치구에 영원한 나의 집을 꾸미는 거야. (...) 집 안의 방들은 천장이 높아 훤하고, 바닥과 창문은 반질반질 윤이 났지. 체구가 작고 신중한 성격의 할멈이 나를 보살펴 주며 은 찻잔이 놓인 쟁반을 품위 있게 들고 오고, 저녁에는 나의 건강을 위해 엘더 베리 주를 한 잔씩 챙겨 주었어.
 
「힐 하우스의 유령」


   힐 하우스는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립된 위치성 이외에도 공간의 특수한 구조가 주는 기괴함으로 인해 묘한 압박감을 내재한 장소이다. 힐 하우스의 광기에 사로잡힌 엘리너는 공간이 지닌 생명력에 공포를 느끼는 한편, 돌아갈 집이 없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점차 이곳에 집착을 하다가 결국 힐 하우스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신을 영영 그 장소에 정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지. 저들은 이곳의 규칙을 만들 수 없어. 나를 돌려보내지도, 막지도, 비웃지도, 내게서 달아나지도 못해. 나는 가지 않을 거야. 힐 하우스는 내가 속한 곳이야."

「힐 하우스의 유령」


과거의 기억이 억류된 공간으로서의 집

출처 : unsplash

    「완전한 행복」에서 유나는 어린 시절 원가족과 분리되어 살았던 경험으로 인해 계속해서 시골집을 떠나고자 했으며, 할머니에게 시골집을 물려받았을 때에도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나는 결국 유년시절의 증오와 고통이 담긴 시골집으로 회귀하는데, 시골집이 증거를 인멸하고 살해 사실을 숨기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는 충분한 이해가 어렵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유나가 과거의 연인과 노아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제기가 가능한데, 자신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방식이 반달 늪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 이외에도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나에게 시골집은 단순히 방해 요소를 파괴하고 제거하기 위한 기능적인 측면으로서만 존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억류된 하나의 억압 기제로서, 유나의 삶 전체를 '완전한 행복'에 집착하게 만드는 기억의 구조물이라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출처 : unsplash


   한편, 엘리너는 가족들과 머무르던 집이 존재하는데도 줄곧 자신에게 집이 없다고 말하는데, 엘리너에게 집은 실체적 원형으로서의 공간이라기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소속감을 느끼는 소망의 원형에 가까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엘리너는 자신의 소망, 즉 '소속감'을 실현시켜줄 진짜 집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일 그 자체를 가장 두려워하며, 이로 인해 파멸을 택하게 된다.


"나는 집이 없어요.  세상에서 나에게 속한 물건은  뒷좌석에 놓아둔 종이 상자에  들어 있죠.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예요.   , 아이였을  물건, 어머니가 주신 손목시계. 그러니 나를 보낼 곳은 없어요."
 
「힐 하우스의 유령」


타의에 의해 고립된, 선택받지 못한 여성들의 최후

출처 : unsplash

   유나와 엘리너가 타의에 의해 고립되어 집에 대한 집착과 불안을 품게 된 것처럼, 사회의 의도된 기획으로 인해 주도성을 박탈당한 채 사회적 연결망과 분리된 여성들은 집을 좌절된 기억과 공포의 장소로 재인식하게 된다. 타인과의 단절은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무가치하고 초라한 자아상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게 되며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여성들의 불안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엘리너의 경우처럼, 여성에게 집은 고통과 죄책감의 공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부장제와 결합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남성만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으로 취급되며, 자본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가사노동을 수행할 뿐인 여성은 집의 어떠한 공간도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남성은 집 바깥에서 (자본주의적인) 생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 여성에게 자신의 재산(집)을 관리하는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동시에 가사노동과 돌봄의 수행자로서의 역할에 여성을 가둔다. 만약 여성이 집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떠맡게 된다. 여성은 이 과정에서 괴로움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것이 하나 없는 공간을 계속해서 돌보아야 하는 여성에게 사회가 부과한 불합리한 숙명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내 잘못이었죠. 어머니가 벽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고 또 불렀지만 나는 잠에서 깨지 않았어요. 어머니께 약을 갖다 드렸어야 했는데. 전에는 항상 그랬죠.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 "그때 이후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혹시 그때 잠에서 깨었던 건 아닐까?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는데 그냥 무시하고 다시 잔 거라면? 그럴 수도 있잖아. 정말 궁금해."

「힐 하우스의 유령」


   유나와 엘리너가 죽음을 택하는 결말도 여성이 주도적으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죽음뿐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스스로를 향한 여성들의 부정적 인식은 다시 사회와의 연결을 시도하는 여성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며, 끝없는 고립의 상태로 접어들게 만드는 억압으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무력감은 결국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집은 오로지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안전한 공간이므로, 사회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에게 집은 공포와 불안의 장소이자 무력감을 되풀이하는 사회적 위치인 셈이다. 여성들은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집'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이는 결코 실현시킬 수 없는 헛된 소망이므로 끝내 그들을 "산 채로 갇혀" 죽게 만든다.


"산 채로 갇혀 죽었죠."
엘리너는 돌처럼 굳은 얼굴들을 향해 다시 깔깔거리다 말을 이었다.
"산 채로 갇혀 죽었죠. 나는 여기 있겠어요."
 
「힐 하우스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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