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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구 Mar 13. 2022

당신도 물건을 버리지 못하나요?

글 : 호수몽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을 좋아할 뿐이다. 어떻게 그런 환경을 가꿔나가야 하는지 모른 채 10번째 집에서 짐과 함께 살고 있다.



   이사할 때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처리하지 못해 매번 본가에 보냈다. 본가에는 출발지가 다른 이삿짐 박스가 성벽을 이뤄서 엄마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박스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는 집에도 물건이 하나둘 쌓여서 내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과연 나는 이 물건과 건강한 관계를 맺거나 끊을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찾아가려고 한다.


창고 사진 일부


   쓰지 않는 것을 한데 모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뒀다. 사실 이 물건들이 한 번에 몽땅 없어져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못 버리고 있다. 헤어질 때 쿨하게 인사하면서 보내주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바짓가랑이 붙잡고 놔주지 않는 구애인이 된 거 같다. 아마도 물건은 이젠 제발 자신을 버려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나에게 필요할 거야


   이 마법의 문장은 물건을 단 하나도 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언젠간 미래의 나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언제가 될지도 모를 미래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나에게 가서 널 위해 10년간 모아 온 물건이라고 전달해주면 미래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연실색할까. 아니다. 아마 자신도 그만큼 물건을 모아 왔다고 건네줄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빈티지 옷가게에서 구매한 닥터 슬럼프 손수건


“잘 사용하지도 않는 거 뭐하러 가지고 있어. 공간만 차지하지!”

   고등학생 때 구제 옷가게에서 구매한 손수건이다. 그 당시 나는 귀엽고 독특한 것에 끌렸다. 단 하나밖에 없다는 상술에 넘어가서 쓰임새를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구매했다. 그리고 10년 내내 엄마가 버리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절대 사수했다. 물론,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다. 용도를 찾으려고 궁리해 봤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손수건은 마땅한 쓰임새를 찾기 어려웠다. 짐 정리할 때 발견하면 잠깐 기분이 좋을 뿐이다. 그럼 왜 이 손수건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왜냐고 물으면 귀여워서…? 여전히 버리지 못하겠다. 일 년에 두어 번 들여다볼까 말까 하지만 그 잠깐의 기쁨을 놓지 못하겠다.



2018년 제주에서 얻은 전시 팸플릿


   이 팸플릿은 판형이 특이했고 무엇보다 내용이 언젠간 나에게 영감을 줄 거 같아서 버리지 못했다. 문제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떤 전시이고 어떤 작가들이 참여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읽어야지. 나중에. 나중에. 이러면서 지금까지 미뤄왔다.



2018년 제주에서 얻은 전시 팸플릿


   망했다. 내용을 알고 나면 버리는 데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서 펼쳐 봤다가 더 버리지 못하게 됐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지구환경에 대한 인류의 비전을 탐구해 보자는 것이다. 즉 새집 (birdhouse)으로 인류의 새집 (new house)을 고민해 보게 된다.” 아마 나는 수집한 수많은 것을 내 뇌에 모두 담을 수 없어서 한데 모아뒀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정보를 얻으려고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하다.



대나무 빨대



   직접 구매하거나 얻은 물건 외에도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인데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받은 물건도 많다. 사은품, 경품, 웰컴 키트 등등. 어디선가 대나무 빨대를 받았다. 받고 나서야 평소에 빨대를 쓰지 않는 걸 알았다. 언젠간 필요하겠지 싶어서 놔뒀지만, 오늘 보니까 다 부서지고 먼지가 가득 껴서 아마 사용하기 어려울 거 같다. 인간의 쓸모에 의해 만든 물건을 인간의 변덕으로 무턱대고 버리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집에 이고 지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용도가 없어졌으니 이 빨대는 버려야겠다.



제품 사용설명서와 엽서


   작년에 매트리스를 구매했더니 설명서와 엽서 3장이 들어 있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추가로 준 엽서는 기쁨이라기보다 고민을 하나 더 얹어준 격이다. 하우스메이트는 필요 없으면 버리자고 했지만 빤빤한 새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될 짓 같다. 설명서는 버리고 엽서는 버리지 않았다.



애플 펜슬 상자


   언젠간 당근 마켓을 이용할 거 같아서 3년째 박스를 버리지 않았다. 정작 나란 사람은 고심하고 들인 물건은 고장 날 때까지 쓰고, 더군다나 물건을 중고로 팔아본 적도 없다. 이 상자는 쓰임을 다했고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버리기로 마음먹으니까 창고에 있는 아이패드와 맥북 상자도 떠올랐다. 그건 다음에 생각해야겠다.


   앞으로 버려, 말아 심판대에 올라설 수많은 물건 중에 나는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물건에 종속된 채로 쌓아만 두다가 언젠가 그 짐에 파묻히는 장면이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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