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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Mar 01. 2021

00. 셋이 사는 우리집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이 사람이면 함께해도 좋겠다 생각하면서부터 꿈꾸던 집이 있습니다. 크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우리의 취향이 가득 담긴 우리집. 아마도 그런 생각으로 우리의 시작을 정말 작은 집에서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의 첫 집은 남편의 부모님 댁 반지층 열 평 남짓의 정말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손수 철거하고 페인트칠하고 벽 선반을 붙여가며 정말이지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양쪽으로 난 창 덕분에 집은 늘 밝고 쾌적했습니다.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은 큰 냉장고와 길고 좁은 식탁이 있었던 집은 하나하나 신경을 쓰지 않은 곳이 없어 지금도 여전히 애정 하는 공간입니다.

작은 집에서 10개월 정도를 지내다 연고도 없는 정반대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를 왔습니다. 신도시가 막 생기기 시작했을 때라 분양을 받아서 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부부는 그쪽으로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저 살다 보니 좀 작은 집이 불편했고, 이제 막 가족이 된 부모님과의 관계의 답답함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 했던 곳에 반해 그 길로 집을 알아보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집에 세입자가 되게 된 것입니다. 세 살이 2년 동안 아이가 생겼고, 돌도 되지 않은 아이와 이사가 너무 힘들겠다 싶어 고민하다가 요즘 말하는 영끌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세입자에서 집주인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충동적이고, 무계획한 일들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시기, (우리에겐 버거웠지만 나름은) 좋은 가격에 구입한 집에서 우리는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밥 먹고, 놀고, 싸우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오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세입자였던 기간까지 포함 만 7년을 이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 사이 부동산 정책은 몇 번 바뀌었고, 근처엔 정말 아무것도 없어 차로 10분 거리의 이웃 동네 마트를 다녀야 하던 곳에서 전형적인 신도시, 도보 5분 지하철 역 두 군데, 도보 10분 내에 대형마트와 상가가 가득 찬 동네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집값은 조금씩 올랐고, 조용해서 살기 좋았던 동네는 완전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철마다 꽃이 피는 아파트 공원은 사계절 예쁘고, 걷기 좋은 호수공원과 산들은 좋습니다. 지은 지 10년도 안 된 집은 여전히 새 것 같지만 우리는 다시 고민했습니다. 생활의 때가 끼기 시작한 화장실과 주방, 조금씩 변한 색의 벽지와 마루를 수리해서 조금 더 지내는 것이 좋을까? 조금 나아진 형편만큼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갈까? 아니면 꿈에 그리던 땅과 가까운 단독주택으로 옮겨볼까?

고민의 시간은 꽤 길었던 것 같습니다. 일 년 남짓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이상을 서로 맞춰보고, 예산을 맞추고, 꼭 갖추고 싶은 것과 포기해도 좋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가 고민하는 내내 이어졌습니다. 길어진 집 안 생활,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집 값이 더 오를 거야 라는 기대로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지하철이 생기고, 서울로 가는 교통이 좋아지고, 생활편의시설이 늘어나면서 집값은 우리가 구입할 때에 비해 많이 올랐습니다. 돈의 흐름에 기대자면 조금 더 오를 것 같은 일들이 남아 있고, 그런 생각이 들면 조금 더 이 집에서 사는 것이 낫겠지만 우리는 조금씩 준비를 했습니다.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곳으로, 아이가 눈치 보지 않고 뛰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땅을 밟으며 살 수 있는 곳으로.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세 번째 집을 함께 찾으러 다녔습니다. 작고 소박한 단독주택, 마당이 있고,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곳. 여전히 서울로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 있어 더 멀리는 갈 수 없으니 지금 우리집 인근으로 조금씩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다행히도 신도시에는 타운하우스가 많고, 작은 필지의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주택 단지가 몇 군데 있어 주말마다 조금씩 동네 마실 삼아 구경을 다녔고, 여러 집들을 보면서 우리 가족과 어울리는 집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으로만 그리던 집에 상상의 벽이 생기고 상상의 문과 창문을 달고 계단을 넣고, 상상의 지붕을 올렸습니다. 정말 이대로 집을 지어도 좋겠다. 차라리 땅을 사서 집을 지어볼까 생각하는 중에 우리 가족에게 딱 좋은 집을 찾았습니다. 조용한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이웃들, 넓고 시원한 주방과 햇살이 부서지며 들어오는 큰 창이 있는 2층 집. 여름이면 작은 수영장에 물을 채워 놀 수 있는 공간과 겨울의 낭만을 만들어 줄 화목난로가 있는 우리집.

예닐곱 개 본 중에 기억에 남는 두 집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의 두 번째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습니다. 그게 바로 지난 주였습니다. 집이 그렇게 빨리 팔리진 않을 테니 기대하지 말자 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보았던 그 집이 다른 이에게 팔려버릴까 조마조마했습니다.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이라 남편은 이야기했습니다.

“집은 결혼이랑 같아서 인연이 있는 것 같아. 아무리 좋아도 연이 아니면 닿지 않고, 헤어질 이유를 수만 가지 얘기해도 결국 인연이면 만난다니까. 그 집이 우리집이면 우리를 기다릴 거야.”

친한 친구에게도 조바심 나는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같은 얘길 했습니다.

“내 집이 될 집은 기다리고 팔리면 그건 내 집이 아닌 거더라. 좋은 소식 있을 거야. 나도 한 달은 걸렸어.”


다음 날, 정말 기적같이 부동산에서 처음으로 집을 보러 와도 되겠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온 중년의 부부. 아마도 우리 엄마아빠 정도 되셨을 부부는 집을 둘러보고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지만 내 새끼 잘못은 내가 안다고 열심히 쓸고 닦은 우리집의 단점이 내 눈에도 보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집을 구매하고 싶어 하신다고, 대신 몇몇 가지 손 볼 곳은 있는 것 같으니 조금 깎아달라고 한다고,

그렇게 가계약금을 받고, 하루 지나 바로 어제(현재 시각 새벽 3시) 매도 계약을 마치고 나름 큰돈인 계약금도 받았습니다. 바로 연락해서 마음속 우리 집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두 번째 우리 집을 팔고 세 번째 우리 집을 샀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집을 사고파는구나. 정말 집과 인연이 닿는 사람이 있구나.

세 번째 우리의 집에는 우리 가족의 이름을 다 넣은 문패를 달아주려 합니다. 예쁜 우체통을 집 앞에 세우고, 집을 둘러 라벤더와 로즈마리를 심고 싶습니다. 넓은 창 썬룸에서 햇살 좋은 날엔 고양이들과 일광욕을 하고, 비 오는 날엔 전 부쳐 막걸리도 한 잔 해야겠지요. 이제 더 이상 어린이에게 “뛰지 마. 살살 걸어.”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린이가 가장 하고 싶은 말 “저 이제 자러 올라갈게요.” 할 수 있는 작은 이층 집.

둘이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받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수작 맨션. 이제는 셋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블럭 놀이를 하는 수작맨션이 되었습니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
이사는 4월 30일 예정. 정리는 그 후로 오랜 시간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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