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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Mar 05. 2021

01. 꿈의 집, 집의 꿈

집을 생각하다가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26) 집 계약을 마치고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아 무척 들떠 있습니다. 나의 이 엄청난 들뜸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티가 나지 않을 리가 없는 나는 매일 남편에게 ‘진정하시오!’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사 갈 집은 3년밖에 되지 않아 거의 새 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깔끔하게 도배를 하고 취향에 맞지 않는 몇몇 곳을 손봐야겠다 생각이 들어 도움이 될 사진과 책을 계속 찾아보면서 업체에 견적 문의할 것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집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은 모든 곳이 재생산과 재충전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보기에만 좋은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곳. 하여 그 어느 곳도 어느 다른 곳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덜 중요한 곳은 없다.

현관과 마당은 깨끗하고 쾌적해야 한다. 가족이 바깥 활동 후 쉬러 집으로 오는 순간 제일 처음 마주하고 집에서 바깥으로 생산활동을 하기 위해 출발하는 곳이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하는 공간. 시작과 끝은 중요하다.

주방과 다이닝은 안전하고 다정한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채워주는 곳. 따뜻한 밥상이 차려지고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내 하루를 이야기하고, 네 하루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 내 어릴 적 기억에 불편하게 먹은 밥은 먹어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마주하는 시간이 짧은 요즘 우리의 생활에 늘 다정한 이야기만 나눌 수 없어 아쉽지만 우리의 그곳에서는 충고와 질책, 비난보다는 칭찬과 격려, 공감이 함께하길. 그저 다정하고 따뜻하길.

거실은 모두가 모여 편하게 딩구르는 곳. 각자의 방의 중간에서 우리를 모이게 하고, 함께 무엇을 하게 하는 곳이다. 늦은 밤 부부는 함께 영화를 보고, 주말 낮 부자는 게임을 한다. 소리 지르며 싸워도 들어가질 못하고 밍기적 거리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화해의 순간을 찾는 공간. 거실은 작은 집의 광장이다.

화장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항상 평화로워야 한다. 습하지 않고 지저분해지지 않게 신경 써 관리해야 한다. 화장실은 배출만 하는 곳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 발가벗은 나로 쉬는 곳이다.

각자의 방은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묻어 있어야 한다. 조금은 나답게 어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정리한 공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들추거나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방은 나의 마음이 되고, 너의 방도 너의 마음이 되길. 열고 싶을 땐 활짝 열어두고, 닫고 싶은 날엔 문을 닫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길. 닫힌 문은 힘으로 열지 않고 스스로 열리길 기다리기. 열려있다고 함부로 휘젓지 않기.



미학적으로나 편의를 위해서나 집의 하드웨어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틈나는 대로 열심히 레퍼런스를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집’이라는 공간은 안의 가구의 브랜드, 소품의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집은 어떤 곳일까요? 과연 집은 어떻게 되어 있어야 오래오래 질리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요? 공간은 물건으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으로도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집을 꾸밀 때 우리는 상상을 합니다.

나의 상상에는 우리의 가족이 있습니다. 미니카와 로봇들, 크고 작은 블럭들을 몽땅 꺼내와서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아들, 장르불문의 많은 책과 교복 입은 학생 때부터 하나 두 개 모은 VHS를 색깔 맞춰 정리하고 뿌듯해하는 남편,  창 밖 새 구경이 너무 좋은 고양이들, 요리도 공부도 작업도 모두 주방과 식탁에서 하는 나.   

인테리어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합니다. 보여주기 좋은 것으로 채운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우리의 집이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편한 곳이길, 매일매일 돌아가고 싶은 곳이길, 기쁨을 가장 먼저 전하고, 슬픔을 위로받는 곳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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