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래 Dec 27. 2021

다섯. 작은 텃밭

2021년 나를 바꾼 열 가지

우리 집에는 가족이 아니면  모르는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세모마당이라고 부릅니다.   쪽에 직각 삼각형의 공간인데, 이사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아주 작은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무슨 계절에 어떤 게 수확되는 지만 알지 때 맞춰 수확하기 위해서는 언제 심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우리는 일단 고추 모종 몇 개와 상추씨, 토마토 씨앗을 대충 뿌려두고, 고양이들을 위해서 밀싹을 키워보자 했습니다.


고추 모종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고, 상추도 밀도 싹을 틔워 조금씩 자랐습니다. 밀싹을 한 번 수확해 고양이들이 먹을 때까지 토마토는 겨우 떡잎을 보이고 가끔 한 두 잎 정도 더 나와 토마토는 실패라고 생각하고 고추랑 상추나 잘 키워서 먹어보자 했습니다.


한 여름이 되자 고추는 거의 매일 네다섯 개, 많은 날엔 열개 남짓 수확을 해서 먹을 수 있었고, 상추도 뭔가 비실비실한 느낌 이긴 했지만 연하고 보들 해서 끼니마다 잘 먹었습니다.


텃밭 같은 거 관심도 없고 벌레 끼고 귀찮다 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매일 자라는 채소들을 보면 뿌듯하고 기특했습니다. 그 사이 토마토 줄기도 제법 굵어져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아주아주 작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엔 거의 쓰러질 것처럼 넘어졌다가 다시 해가 나면 스스로 힘을 내 조금씩 일어나 오후가 되면 다시 꼿꼿하게 서는 상추를 보면서, 그렇게 굵지도 않은 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고추를 보면서, 영원히 맺히지 않을 것 같이 소식이 없다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초록에서 주황으로 빨강으로 익어가는 탱탱한 토마토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모두 살아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자라는 중, 비바람이 몰아쳐 죽을 것 같아도 살아내는 중.


집에서 채소를 키우는 것은  이상의 감동이 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저렇게 열심히 자라는 중일 텐데,  멈춰있냐 닦달하지 말아야지. 어른들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중이니 채근하지 말고 기다려야지. 스스로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지.


내년에는 조금  넓은 땅에 텃밭을 꾸리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오이와 가지, 고추와 토마토, 호박, 가능하다면 옥수수와 고구마도 키워보고 싶습니다. 작은 텃밭에  개의 모종만 심어도 가족 셋이 먹을 양은 충분히 나오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사실 키우고 수확하는 감동과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은 맛입니다. 방금 수확한 채소는 유명한 종자와 브랜드, 이름난 농장의 것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이렇게 는 순간에도 소리가 들리는  같네요. 와사삭 파팟! 신선한 채소의 소리입니다.


내년에 코로나가  사라지면 놀러 오세요.

우리 와사삭 파팟, 하는 채소에 같이 맛있게 밥을 먹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넷. 차(te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