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나를 바꾼 열 가지
우리 집에는 가족이 아니면 잘 모르는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세모마당’이라고 부릅니다. 집 뒷 쪽에 직각 삼각형의 공간인데,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아주 작은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무슨 계절에 어떤 게 수확되는 지만 알지 때 맞춰 수확하기 위해서는 언제 심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우리는 일단 고추 모종 몇 개와 상추씨, 토마토 씨앗을 대충 뿌려두고, 고양이들을 위해서 밀싹을 키워보자 했습니다.
고추 모종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고, 상추도 밀도 싹을 틔워 조금씩 자랐습니다. 밀싹을 한 번 수확해 고양이들이 먹을 때까지 토마토는 겨우 떡잎을 보이고 가끔 한 두 잎 정도 더 나와 토마토는 실패라고 생각하고 고추랑 상추나 잘 키워서 먹어보자 했습니다.
한 여름이 되자 고추는 거의 매일 네다섯 개, 많은 날엔 열개 남짓 수확을 해서 먹을 수 있었고, 상추도 뭔가 비실비실한 느낌 이긴 했지만 연하고 보들 해서 끼니마다 잘 먹었습니다.
텃밭 같은 거 관심도 없고 벌레 끼고 귀찮다 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매일 자라는 채소들을 보면 뿌듯하고 기특했습니다. 그 사이 토마토 줄기도 제법 굵어져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아주아주 작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엔 거의 쓰러질 것처럼 넘어졌다가 다시 해가 나면 스스로 힘을 내 조금씩 일어나 오후가 되면 다시 꼿꼿하게 서는 상추를 보면서, 그렇게 굵지도 않은 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고추를 보면서, 영원히 맺히지 않을 것 같이 소식이 없다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초록에서 주황으로 빨강으로 익어가는 탱탱한 토마토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모두 살아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자라는 중, 비바람이 몰아쳐 죽을 것 같아도 살아내는 중.
집에서 채소를 키우는 것은 맛 이상의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저렇게 열심히 자라는 중일 텐데, 왜 멈춰있냐 닦달하지 말아야지. 어른들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중이니 채근하지 말고 기다려야지. 스스로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지.
내년에는 조금 더 넓은 땅에 텃밭을 꾸리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오이와 가지, 고추와 토마토, 호박, 가능하다면 옥수수와 고구마도 키워보고 싶습니다. 작은 텃밭에 몇 개의 모종만 심어도 가족 셋이 먹을 양은 충분히 나오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사실 키우고 수확하는 감동과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은 맛입니다. 방금 수확한 채소는 유명한 종자와 브랜드, 이름난 농장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 이렇게 쓰는 순간에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와사삭 파팟! 신선한 채소의 소리입니다.
내년에 코로나가 좀 사라지면 놀러 오세요.
우리 와사삭 파팟, 하는 채소에 같이 맛있게 밥을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