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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Dec 29. 2021

여덟. 돌아온 봉고

2021년 나를 바꾼 열 가지

고양이는 뭐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업연으로 만나는  같다. 무려 세 마리나 옆에 두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까 싶지만 확실히 반려동물은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모여 마치 누가 정해준 것처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너와 너는 다음 생에 멀고 가까운 사이로 다시 만나 서로에게 의지하고 살아라’


 우리가 이사를 하던 시기에 동생도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거의 5년을 부모님과 지내다 다시 독립을 하게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축하할 일이었지만 우리에겐 고민이 생겼다.


[봉고를 어떻게 해야 할까?]


봉고는 우리의 첫 고양이이다. 정확하게는 나의 첫 고양이. 2011년 작업실을 만들고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하다 보니 고양이병에 걸리고 말았다. 홍대에 살면서 작업실도 하나 꾸리고 있으니 고양이도 한 마리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데려온 아기 고양이였다. 생각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다행히도 ‘고양이 쇼핑’을 하지 않았고, 엄마 잃은 아기 고양이를 동물병원에서 치료 보호하고 이제 좋은 보호자를 찾는다는 입양 글을 보고 만났다.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 없이 만난 아기 고양이는 정말 보석 같았다. 작고 예쁜 고양이, 꼬리가 아주 짧고 구부러져 있었는데 그것마저 ‘우쭈쭈, 우리 고양이는 꼬리도 동그라미네. 너무 귀여워.’ 하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출퇴근을 함께 했고(고양이 품에 안고 다닌 사람 여기 있어요.), 잠도 함께 자려고 했다. 아기 봉고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정말 잘 따랐는데, 희한하게 배변과 취침은 무조건 동생만 따라 했다. 동생이 화장실에 가면 따라가서 마주 앉아 똥을 싸고, 동생이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옆에 올라가 같이 잤다. 그렇게 ‘봉자네(그때 당시 트위터에서 쓰던 닉네임) 고양이’ 봉고는 동생의 고양이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동생과 따로 살게 되면서 봉고는 자연스럽게 동생과 함께 했다. 봉고도 먹고 싸고 자려면 동생이 필요했지만 동생도 작은 고양이에게 많이 의지 했다. 20대의 희로애락을 모두 봉고와 함께 했으니 애틋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온 동생은 봉고와 함께   없었다. 이미 열 살이 된 고양이를 좁은 오피스텔에 혼자 두고 하루 종일 밖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보통의 월세든 전세든 임대한 오피스텔, 아파트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길 바란다.


나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동생과 유대가 깊어 우리 가족과 친밀한 관계 형성이 어려웠고, 처음 키울 때 너무 무지했던 상황이라 교육을 못해 화장실도 쓰질 않고(화장실 타일에서만 볼 일을 보는 특이한 고양이 여기 있어요.) 선척적인 꼬리 기형에서 오는 뒤뚱거림과 불안정한 걸음걸이도 이층 집에는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봉고는 지금 같이 사는 벌이, 미남이에 비해서 사나운 편이다. 하악질도 잦고 성질나면 굳이 다가와서 할퀴고 가는 정성스러운 성질쟁이이다. 무엇보다 지금 고양이도 두 마리나 있는데, 나이 많은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책임지는 것이 마음이 썩 내키질 않았다.


동생과 나의 눈치싸움에 남편은 “봉고는 처제가 아니고 나랑 자기가 데려왔으니 책임을 져야지. 울산에  수도 없잖아. 일단 데려와보라고 그래. 되려 벌이 미남이가 있어서 운동량도 많아지고 하면 건강해질지도 모르잖아.”라고 했다. 청소기를   밀고 나면 고양이 털이 어마어마한데, 밥은  얼마나 먹을 것이며, 병원도 데리고 다녀야 하고, 화장실에 냄새나는  어쩔 거냐고 했지만 사실 고마웠다.  그대로 우리가 데려온 내 고양이 동생이었.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지 않아 정이 깊진 않은데, 어쩌나


봉고는 이제 우리와 함께 지낸다. 아마 남은 모든 날들을 함께 지낼 것이다. 다른 고양이들도 그렇지만 7 남자 어린이와 함께 지내면 운동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좋다고 쫓아다니고 벌이와 미남이와 함께 밤만 되면 술래잡기를 한다. 푸석했던 털에서 윤기가 나고, 무기력했던 눈빛이 다시 초롱초롱하다. 2층을 오르내리는 것은 스스로 방법을 찾은  같다. 뒤똥거리며 천천히 오르내린다.


“봉고님 1층으로 입장하십니다.”

“할머니 2층 올라간다.”


 썬룸 문을 열면 어디선가 나타나 해가 드는 의자 위로 깡총 올라가 낮잠을 자고, 여름엔 어린이의 물놀이를 마당에 멀찍이 앉아 구경한다.


장에 신경이 거의 죽어 변비가 아주 심한 고양이. 유화제를 매일 먹여야 하고, 똥을 못 싸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갈 때마다 병원비도 적지 않게 나온다. 얼마 전엔 어린이를 할퀴어 상처를 내기도 했다. 이런저런 성질이 나는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봉고가 우리와 함께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5년은 넘게    있을 거라고  늙은 모습도 상상하곤 한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앞에서 기다리다 누군지 확인하고 쪼르르 어딘가로 가서 숨고, 화장실에 가면 옆에  앉아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는 고양이가 조금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언니와 형부, 귀찮지만 점점 크는  신기한 조카와 행복하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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