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 May 24. 2024

난 그대를 원해요(Je te veux)

*inspired by Erik Satie

학자금 완납이라는 목표만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5년을 내달린 선주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동안 주변 친구들이 어학연수다 유학이다 배낭여행이다 해서 외국으로 떠날 때 행여나 부러움에 단단히 죄었던 마음이 흐트러질까 봐 일부러 더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며 지냈다.

선주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다른 세상이 궁금했다. 만화 영화보다 여행 다큐멘터리를 좋아했고, 소위 어린이 추천도서나 청소년 권장도서보다는 동서고금의 여행서를 즐겨 읽었다. 심지어는 장래희망란에 원대하거나 안정적인 직업 대신 '세계 여행' 네 글자를 꼬박꼬박 써 넣을 정도였다(물론 그것 때문에 교무실로 불려 가기도 했지만).

열여섯까지만 해도 선주는 어른이 되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줄 알았지, 몇 천만 원짜리 대출금을 짊어지고 집-학교-알바처 혹은 집-회사만을 오갈 줄은 알지 못했다. 열일곱부터 선주의 삶은 마치 국경이라도 넘어선 듯 이전까지 삶과는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대출금 완납 내역을 보고서 선주는 가장 먼저 사직서를 썼다. 계획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그렇다고 감격에 겨운 선택도 아니었다. 대출금 완납은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다는 뜻이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0이 되었으니 이제야 겨우 출발선에 섰다는 뜻이었으니까. 선주는 새로운 트랙을 달리기 전에 그저 한번쯤 가쁜 숨을 고르고 싶었다. 자그맣게나마 숨구멍이 트이고 나니 그 사이로 어린 선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떠나고 싶어."

5년치 퇴직금을 정산 받았다고는 해도 겨우 0의 궤도에 섰기에 무턱대고 돈을 쓰기만 하며 여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법을 알아보던 차에 선주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로 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외국계 회사에서 내내 일했던 선주에게 영어권 국가로 가는 일은 여행이 아니라 꼭 일의 연장처럼 여겨졌다. 지금까지 일상과는 아예 동떨어진,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이현을 처음 만난 건 일본 출국을 두 달쯤 앞둔 날이었다. 혼자 기초 문법 공부를 끝내고서 회화를 연습할 방법을 찾다가 마침 한국어 언어 교환자를 구하던 이현과 연이 닿았다. 이현은 재일교포 3세로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청소년기는 아버지 일 때문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지냈으며,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학과 짧은 직장 생활을 마쳤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 영향으로 이현 인생에서 가장 큰 화두는 정체성 찾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현은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가족 속에서 구김도 혼란도 없이 성장했다. 그래서 청년 이현은 어떤 종류의 틀에도 갇히지 않고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따라 자유로이 부유하기만 하는, 순도 100%의 방랑자 같았다. 16~17세기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박물학자가 되었을 법한.  

이현과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섞어 가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선주는 시나브로 깨달았다. 이현에게서는 쨍하니 차가운 겨울 새벽 공기 같은, 순수 방랑의 냄새가 풍긴다는 걸. 태생적 환경은 달랐지만 열여섯 선주의 삶이 마치 국경을 넘듯 급변하지 않았다면 선주도 아마 이현과 같은 냄새가 풍기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아직 풋사과처럼 젊은 선주는, 속절없이 이현에게 빠져 버리면서도 그 마음이 영영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이자 가져 본 적 없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라고만 여겼다.

선주와 이현은 늘 정독도서관에서 만나 삼청동에서부터 혜화동까지 줄곧 걸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어설픈 일본어와 한국어, 이따금은 영어로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선주는 이현이 하는 말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그 믿음 속에서는 내내 무겁기만 했던 자신의 존재가 한껏 가벼워지는 듯도 했다.

괜스레 웃음이 새고 숨이 조금 차고 몸에서 까닭 모를 열감이 느껴지는 사이 두 달이 흘렀다. 선주가 도쿄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이현과 헤어질 때 마음께가 찌르르 울렸지만 선주는 그 감정에다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선주가 도쿄에서 지낸 지 6개월쯤 되었을 무렵, 이현에게서 메일이 왔다. 두 사람은 서울에서 헤어진 뒤에 두어 번쯤 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이현이 서울을 떠나 런던으로 간 이후로는 연락이 뜸해졌었다. 이현은 원래 런던에서 지낼 생각이었는데 본가에 일이 생겨 도쿄로 돌아왔다며, 선주에게 아직 도쿄에 있다면 산책을 하러 가자고 했다. 매우 오래만인데도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양 담담하고 친근한 어투였다. 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는 내내 또다시 마음께가 찌르르 울렸지만 선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11월 어느 날의 오후 5시 반, 신주쿠역 남쪽 출구. 웅성거리며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 사이에 서서 선주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자꾸만 숨이 차는 듯해서. 게다가 왠지 모르게 시선은 자꾸만 발끝을 향했다. 왜 이럴까 싶은 순간, 푹 떨군 선주의 시선 안으로 낯익은 운동화가 들어왔다. 이현이 늘 신던 하얀 척테일러였다.

두근두근. 거짓말처럼 사위가 조용해지더니 쨍하니 차가운 겨울 새벽 냄새가 훅 풍겨 왔다. 그 운동화는 조심스레 선주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말없이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야 하는데 귓구멍이 아플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때문에 선주는 잠시 아찔해졌다. 이윽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보니 단정한 이현이 개구진 표정으로 선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한 달에 한두 번쯤 만나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치 영화 <텐텐>의 주인공들처럼 도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현과 함께하는 날이면 선주는 내딛는 걸음걸음에 맞춰 전등이 탁탁 켜지는 것 같았다. 선주에게 도쿄는 곧 이현이었고, 그래서 이 거대한 도시가 주머니에 쏙 넣고는 매일매일 꺼내 보고 싶은 만큼 사랑스러운 선물이 되었다.

그날도 선주와 이현은 우에노 국립과학박물관을 한참 구경한 다음 설렁설렁 야나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잘 익은 귤 같은 해가 슬그머니 서산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현이 말했다.

"노을을 보면 어쩐지 슬퍼지는데도 좋아서 자꾸만 보게 돼."

선주는 노을 대신 지는 해를 따라서 길게 늘어져 제 발끝에 닿은 이현의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무릎을 굽혀 이 그림자를 살포시 끌어올려 품에 안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현이 기척 없는 선주를 돌아보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노을을 등지고 선 어둑한 이현의 모습이 선주에게는 꼭 제 마음을 알아챈 그림자가 벌떡 일어선 것처럼 보였다. 선주는 그림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혼잣말인 듯 고백인 듯 속삭였다.

"아름다워서."

그 말에 이현도 말없이 한참동안 제 그림자를 바라봤다. 생각지도 못한 침묵에 퍼뜩 정신이 든 선주가 이현을 쳐다보니 이현도 그제야 고개를 들어 선주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는 싱긋 웃더니 다시 노을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전철을 기다리느라 플랫폼에 서 있었어. 내 앞으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더라. 그 애는 후드집업을 입고 있었고, 그 애 엄마는 집업에 달린 후드 끄트머리만 살짝 잡은 채로 아이 뒤를 따라 걸었어. 이를테면 내게 '아름답다'는 건 그런 거야."


자유로우면서도 섬세한 사람인 이현이 그동안 자신을 바라보며 떨리던 선주의 눈빛을, 발그레해지던 선주의 볼을,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아름답고도 단호한, 참으로 이현다운 거절이었다.

오히려 선주야말로 그때까지 자신의 떨리는 눈빛이, 발그레해진 볼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런데도 하나만큼은 또렷이 알았다. 이현을 향한 자신의 애틋함과 자신을 대하는 이현의 다정함이 결코 같은 결은 아니라는 것. 그랬기에 선주는 이현의 따뜻한 말이 차가운 거절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무엇에 대한 거절인지는 모른 채 괜스레 서글퍼지려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답네."

이현이 "그런가?"하며 눈웃음 짓는데 토실토실하고 조금 퉁명스러워 보이는 고양이가 왜 길을 막고 섰느냐고 항의라도 하듯 둘 사이를 느릿느릿 지나갔다. 선주가 고양이를 가리키며 꼭 <귀를 기울이면>에 나오는 '문' 같다고 하자 이현이 잔뜩 개구진 얼굴로 살금살금 고양이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현실이라기보다는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하며 선주도 조심스레 걸음을 뗐다. 어느새 귤빛 같은 노을빛 대신 오렌지빛 같은 가로등 불빛이 고요한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날 밤, 선주는 집으로 돌아와 끝내 건네지 못할 편지를 썼다. 마음께가 찌르르 울렸고 선주도 조금, 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웅성거리는 늦가을 오후를 고요한 겨울 새벽으로 바꾸며 선주에게 찾아온 건 노스탤지어도 동경도 아닌 첫사랑이었다는 걸.

항상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그리는 사람. 늘 허밍을 하는 사람. 태국 음식을 '아트'라고 말하는 사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 하루에 두 끼를 먹는 사람. 술을 한 모금만 마셔도 하얀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 웃으면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 사람. 말씨가 단정한 사람. <첼로 켜는 고슈>를 좋아하는 사람. 여전히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카페에 들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 무엇보다 재밌는 걸 좋아하는 사람. 아직은, 혹은 영영 머무르기보다는 떠나기를 좋아할 사람.

이현아. 그래도 내게는 이런 네가, 너와 함께한 시간만이 '아름다움'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My foolish hear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