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메밀의 주 산지가 강원도 봉평이라고 알고있는 사람이 많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1년에 이모작(봄/가을)이 가능한 제주가 국내 메밀의 최대 산지이지만 가공 시설이 부족하여 대부분의 제주 메밀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고, 그 곳에서 메밀가루나 메밀면이 되었다.
이 때문에 강원도가 주 산지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제주가 메밀 재배 면적 및 생산량으로 전국 1위라는 것, 그리고 얼마나 제주의 사람들이 메밀에 진심인지 알려주고 싶다.
제주의 메밀은 봄과 가을, 같은 밭에서 두 번을 심어 수확할 수 있다.
봄의 메밀은 65일, 가을의 메밀은 90일정도로 생육기간이 짧다. 척박한 제주땅에서 2번의 기회를 얻는 구황작물 메밀은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식재료였다. 제주에서 메밀꽃을 만나게 된다면 가까이 다가가서 메밀꽃의 향을 맡아보자. 아마도 깜짝 놀라게 될것이다.
어여쁜 메밀꽃의 반전, 깜짝 놀랄만한 향이 느껴질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는 메밀을 걸쭉하게 만들어 미음으로 먹고 모유를 먹이는 동안 메밀 미역국을 먹는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장례 절차 중 제를 올릴 때 메밀죽을 올리는 문화가 있다. 이렇듯, 제주에서의 메밀은 단순히 식재료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말한다.
"제주는 메밀가루를 양념으로 씁니다. 육개장, 접작뼈국, 미역국에도 넣구요. 김치찌개에도 넣어서 걸쭉하게 먹습니다"
"솥에다 감자를 좀 삶앙 거기에 메밀 가루를 놔서 익히면 그것을 제주말로 범벅이라고 해. 그거 많이 먹었지,그거 참말로 많이 먹었지."
메밀을 공부하며 만났던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보통 메밀을 떠올리면 메밀면, 빙떡 정도가 생각이 나는데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요리의 양념으로 사용되었다는것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제주의 향토음식을 먹고 진국이 느껴지던 순간 아마도 그건, 분명 메밀가루였을듯 하다.
또, 제주 어르신들은 "메밀은 겨드랑이에 품기만 해도 익는다"고 했다. 메밀은 빨리 익어 바쁜 제주인의 삶에서 꼭 필요한 식재료 중 하나였던 것이었다.
입말음식을 통해, 우리는 여러번 메밀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이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가 제주에서 가장 애정하는 식재료가 메밀이 되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함께 안개가 펼쳐진 메밀밭을 다녀오게 되었고,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을 만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김태자 어르신께 메밀 음식을 가득 배우기도 했다.
- 한라산 아래 첫 마을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이름도 참 어여쁘지. 이 마을은 광평리라는 마을로 해발 500m에 10여가구 정도로 이루어진 제주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이름은 마을의 가장 어르신이 만들어주셨다고 한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은 향토 지원사업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고, 사라져가는 마을을 일으키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식당을 방문했을 때, 주방을 살펴보니 정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요리를 하고 계셨다.
어르신들의 음식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세상에 너무나 아름다운 비주얼과 그 이상의 맛을 표현한 비비작면 한 그릇을 받고 정말 깜짝 놀랐지뭐야,
한라산 아래 첫마을 아카이빙은 입말음식의 리더인 일기님의 블로그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제주메밀문화원(B.C.C)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은 표선 제주민속촌에 2호점을 오픈했는데, 식당 바로 옆 메밀문화원에서는 다양한 메밀의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연히 나는 관장님을 뵙게되어, 제주의 메밀, 쓴메밀, 중국의 메밀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듣게 되었다.
메밀은 보통 3가지 품종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양절메밀, 가을토종메밀, 그리고 쓴메밀(타다리메밀)이다.
양절메밀은 봄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는 여름메밀, 여름에 심어 늦가을에 수확하는 가을메밀로 2모작이 가능하다. 삼각마름 모형으로 우리가 보통 먹는 메밀이 양절 메밀에 속한다. 농업 기술원에서 농가 소득을 위해 2계절 동안 심을 수 있는 메밀을 개량한 메밀로 토종 메밀은 아니다. 양절메밀꽃은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흰색 꽃이다.
가을토종메밀은 제주도 토종 메밀로 가을에 수확하는 메밀이다. 양절 메밀과 종자가 다르고, 품종 이름 없이 '토종메밀' 로 불리고 있다. 봄에 파종하면 꽃은 피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다)
쓴메밀은 중국, 네팔에서 자생/재배된 품종으로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것은 2000년대이다.
쓴메밀은 양절메밀보다 크기가 작고 꽃이 초록색인것이 특징이다. 루틴 함량이 70~100 배 이상 많아 차 또는 식의약 소재로 쓰이고 있다.
- 여성농민회 김미랑 생산자의 메밀입말
"농사는 농민들의 과제가 아니다. 전국민의 일로 생각해야 한다." 메밀 음식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여성농민회 소속 김미랑 생산자님의 이야기는 한시도 거를 수가 없었다. 농사는 전국민의 일이라는 말씀이 깊이 남았던 하루였다. 세상을 바꾸는 제주 여성농민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는 책 한페이지만으로도 우리에게 울림이 있었다.
김미랑 생산자님과 함께 우리는 다양한 메밀의 요리를 만들었다. 메밀청묵, 메밀별떡, 메밀조배기(수제비)
청묵도 조배기도 육지것에게는 너무나도 신세계였다. 제주 어르신들은 귤을 만진 손으로 청묵을 만들면 100% 실패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귤의 '산' 성분이 청묵을 망치게 하니 꼭 손을 깨끗히 씻고 청묵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조배기라 하고, 육지에서는 수제비라 칭하는 그 것. 익숙하면서도 만드는 방법에 작은 차이가 있다. 보통 수제비를 반죽을 손으로 찢어서 넣는 방식인데 제주의 조배기는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국에 넣게 된다.
그러다보니 반죽이 조금 통통하게 되기도 하는데 언뜻 보면 고기가 연상되기도 하다. 척박했던 그 시절, 조금이나가 (고기처럼) 포만감을 느끼고 싶었던 마음이지 않았을까, 라고 나는 생각해보았다.
- 입말음식 하미현 대표님의 지구입말
메밀은 제주뿐만 아니라, 세계속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음식으로 만날 수 있다. 세계의 음식을 <지구마을 속 입말>이라는 따뜻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하미현 대표님의 이야기도 정말 좋았다.
국내에는 강원도의 닭반대기라는 음식을 소개해주셨는데, 특색있고 강렬한 맛이었다.
▷ 히말라야 : 칠라르 Chiillare라는 납작한 빵, 튀김 비슷한 파코라(고기나 채소를 넣은 튀김 비슷한 동남아시아 음식)와 과자류를 만드는데 쓰인다.
▷ 이탈리아 북부 : 밀과 혼합해 피조케리 pizzoccheri라는 납작한 국수를 만들며 옥수수가루와 섞어서 폴렌타를 만들기도 한다. 메밀 피자도,
▷ 러시아 : 블리니Blini라는 조그만 팬케이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 또 통그로트를 볶아서 견과 맛이 나는 카샤Kasha라는 죽을 끓인다.
▷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방 : Galettes Bretonnes
▷ 일본인 : 소바
▷ 미국 : 메밀 팬케이크(연하게 만들고 견과 맛을 가미해 준다.)
그렇게, 아카이빙하고 어르신들을 통해 배운것을 펼치는 시간, 입말음식이 나에게 준 선물같은 귀한 시간이었다.
제주입말음식연구회를 통해 만난 모든 인연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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