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ear 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omJIN Sep 01. 2015

모두에게 해피엔딩


비에게 편지를 쓴다.
이게 마지막이다. 

너는 이 편지를 읽어야만 한다.
나는 써야만 한다.

이게 마지막이므로. 마지막이 되어야만 하므로.
지나간 일이고  소용없는 일이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지난 세월 동안 네가 내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었는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나는 너를 생각했다.
나는 너를 위해 살아있었다.
비에게 편지를, 다시 쓴다.

내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너를 알게 된 것, 너를 만난 것, 한때나마 네가 나를 좋아해준 것,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또 다른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왜 나는 너를 잃어야 하냐고.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 왜 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냐고.
마침내 나는 너를 포기한다.

너를 잊는 일을. 너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일을.
그런데 너는 내게 모든 걸 잊으라고, 너를 지워버리라고 한다.
부담스럽다고. 내가. 내 사랑이.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처음부터 너는 세상에 없었다고,
모든 것이 나의 꿈이고 상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의 사진과, 너의 편지와 네가 준 낡은 책들과 레코드들을
나는 버린다. 마치 내 몸을 잘라 버리듯이.
다시, 비에게 편지를 쓴다.
잘 가라, 나의 친구. 너를 만난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우리가 보낸 날들이 얼마나 좋았는지만 남겨두고.
잘 가라, 나의 어린 날들.
너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고 누구를 사랑하고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어떤 일로 즐거울까.
나 없이 너는 어떻게 행복할까…
편지를 찢는다.
…너는 나의 운명이 아니었니?


황경신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