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대해 쓴다고 했을 때, 꺼내야 할 이야기는 한 가지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 하게 될 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냉장고가 될 줄은 몰랐다. 하긴, 냉장고 말고 또 무엇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점심 먹으러 올래?’ 하는 말은 이미 점심상을 다 차려놨으니 시간 맞춰 오란 얘기였다. 미리 잡혀 있는 일정 같은 건 아무리 설명해봐도 밥 먹으러 가지 않겠단 얘기밖에 되지 않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심을 두 번 먹거나 아니면 있던 일정을 늦추고 점심을 먹거나, 오늘 먹어야 할 점심을 그날 저녁 혹은 다음 날 점심으로 미루는 정도였다. 엄마의 집으로 가는 길, 그깟 밥 한 끼,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이냐고 스스로에게 충고하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귀찮음을 눌러 담았다.
'냉장고에 알타리 좀 꺼낼래?'
휴지와 물티슈, 라디오, 신문, 선식, 빵 봉지, 무슨무슨 씨앗과 견과류 등이 어지럽게 놓인 상 한 켠으로 반찬 접시가 올라와 있었다. '배추김치랑 물김치도 있는데 알타리는 뭘 또......'하며 연 냉장고는 차려진 점심 상 보다 더 복잡했다.
'엄마, 여기 뭐 들어 있는지는 다 알고 있어?'
결국 한 마디 하며 이것저것 뚜껑을 열어 보는 내게 엄마는 '됐어, 내가 할게' 하며 알타리가 든 빨간 뚜껑의 반찬통을 꺼내고는 변명처럼 '다 알지 그럼, 그것도 모를까 봐.' 했다.
'아니, 저 치즈는 저번부터 있던 거 아냐? 치킨 무는 왜 모아놔? 무슨 쿠폰도 아니고. 지금 먹을 거 아니면 다 버려.' 빠르게 냉장고 안을 훑으며 잔소리를 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 먹을 거야. 쓸데가 있으니까 뒀지. 얼른 와서 밥이나 먹어.'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이제 짜증이 반쯤 섞였다.
무엇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성격은 냉장고 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까워서, 누가 줬으니까, 언젠가 쓸 데가 있을까 봐 같은 이유로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 것들은 엄마의 인생과도 같았다. 사 남매의 셋째, 위에 형제들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막내 여동생은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와 지지 속에서 자랐지만 셋째인 엄마의 유년기는 '결핍'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부재, 학업의 중단, 가난. 사실 그것만으로는 엄마의 '저장'을 이해하기 충분하지 않았다. 여유가 있을 때에도 엄마는 늘 뭔가를 쟁여두고 있었으니까. 그러고도 늘 부족함에 시달렸으니까.
열 살 쯤엔가 엄마는 아버지 몰래 옷장에서 과학 전집을 꺼내 주었고, 아버지 몰래 내 방에 미니 오디오를 들여놨다. 60권짜리 과학 전집은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볼 수 있었고, 미니 오디오를 듣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몰래 산 그릇들이며 수입 식품들이 그렇게 집 어딘가에 쌓여 있었다. 월급쟁이의 빤한 월급으로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을 사 들였으므로 엄마는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사놓고도 쓸 수 없는 결핍에 시달렸다.
그런 엄마의 '저장의 이유'는 '결핍'의 과거에만 있는 게 아니라 먼 미래에도 있었다. '나중에 너희 아빠가 부장으로 승진하게 되면, 우리가 이런 집으로 이사 가게 되면, 네가 스무 살이 되면' 같은 미래의 일을 위해 엄마는 뭔가를 쌓아 두고 있었다. 엄마에게 '지금'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인 나 역시 없었다. 엄마에게 과거의 어린 나만 작고 예쁜 자식이었고, 미래의 어른인 나는 삶의 희망이었지만, 지금 앞에 숨 쉬고 있는 나는 뭔가 부족한 존재였으니까. 그런 엄마는 나에게 결핍의 정서를 고스란히 물려줬다. 가족이지만 가족의 울타리 밖에 서 있게 했다. 어딘가에 내 엄마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냉장고 속에 잔뜩 든 음식을 앞에 두고도 당장 허기를 달랠 것은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엄마 앞에 서 있었다.
스스로 냉장고를 채울 수 있는 위치가 된 이후부터, 엄마의 냉장고 문을 열 필요가 없어진 이후부터 줄곧 생각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바꾸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채울 수 없는 것과 채울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모두의 대답은 가족이었다. 각자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걷고 있는 가족이란 사람들, 단지 서로의 시기가 맞지 않았을 뿐인 우리들이 그 모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냉장고를 꾸역꾸역 채우고, 아무 때나 점심 상을 차려 놓고 부르는 엄마의 시간을, 그 시간 속에 놓인 엄마를 본다. 굽은 어깨와 목덜미 뒤로 늘어선 그의 여정을 본다. 내게 결핍을 물려준 이유는 어쩌면 당신의 결핍을 이해해달라는 사인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