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와 메리 올리버>
일요일 저녁의 지하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승객들, 둘 씩 셋 씩 모여 손잡이에 온 몸을 기댄 채 달큰한 술 냄새와 숯불 양념 냄새를 적절히 풍기는 사람들 속에서 영화관이 있는 정거장에 내릴 때 까지 메리 올리버의 책을 읽었다. 여든이 넘은 시인이 개인의 늙어감에 대해 얘기하던 페이지에서 멈췄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꽤 지났고, 남아 있는 시간은 아주 활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우아하고 세심하게 보내야 한다. 이제 마을 배관공들은 우리의 옛 배관공의 아들들이다.’ 라는 문장과 남은 페이지들 사이에 검지를 끼워 넣었다. 역에서 올라와 사거리 신호등을 건넜다. 여름 저녁의 늦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남빛을 너머에 숨긴 채 소라, 분홍, 자주와 보라색이 무리지어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바람이 묻어 왔다. 아직은 더위가 잠식하지 못했는지 시원하기 까지 한 여름 밤바람을 밀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대해 자주 물음표를 달고 있다. 누군가를 닮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어떤 방식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태도와 품위, 자세에 대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마음이지만 어떤 것 하나는 단단히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매일 떠올릴 수는 없겠지만 생의 어느 때에 운명이 내 어깨를 잡을 때 운명의 손 위에 살며시 얹을 수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일지, 어떤 것일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지닐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여든 여덟의 노인 바르다와 그 보다 쉰다섯 살 어린, 서른셋의 사진작가 JR이 함께 사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내내 유쾌했다. 프랑스 사진 예술계의 노장은 건물과 집, 거리의 벽 크기에 맞게 사진을 인화해 붙여서 마을 전체를 갤러리로 만드는 젊은 사진작가와의 협업을 제안한다. 프랑스 전역을 다니며 벌이는 이들의 전시 과정에서 서로는 선후배나 사제의 관계가 아니라 동료였다. 수평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이 차, 세대 간의 격차, 살아온 시간의 차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했다. 세월이 쌓아 준 경험을 물처럼 흘려버리지 못한 채 정량화하고 표식처럼 달고 있었다. 영화 속 바르다와 JR은 그렇지 않았다. 경험은 사람을 만들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노인이 되어도 다시 새롭게 또 다른 경험을 찾아다니는 일, 그것은 세상을 다 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다 알 것 같은 나이여도 모르는 게 전부이고 모르는 게 많을 나이여도 지금 아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는 사실. 계단을 한 칸 씩 오를 때 마다 보이는 새로운 것에 환호하는 젊음이 있고, 나이가 든 관절로 더는 오르지 못해도 그만큼에서 조망할 수 있는 나이듦이 있다. 모르기 때문에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수평을 유지할 것. 눈과 귀를 열고 나란히 앉을 것. 경험을 훈장처럼 여기지 않을 것.
나의 시간은 꽤 지났다고 생각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바꿔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다고, 이제 그곳에는 나 보다 어린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은 시간을 이렇게 저렇게 흘려보내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다고 말이다. 그것이 노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노인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다. 경험을 흘려보내고 대신 그곳에 다른 경험을 채우는 것, 추억하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기억을 만드는 일을 끝없이 하는 것, 살아 있는 동안은 줄곧 그렇게 하는 것. 계단을 끝까지 오르지 않아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노인의 마음이었다. 포기와 체념이 아닌 인정과 이해의 마음 말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진하고 푸른 남색의 여름 밤하늘 아래 서서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살면 되겠다. 지금처럼 읽고, 쓰고, 걷고, 얘기하면서. 사는 동안 내내 읽고, 쓰고, 걷고, 얘기하면서. 단단히 지녀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구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