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날들
한자에 약하다. 외우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도 했지만, 영어와 다르게 획을 긋고 외워야 하는 글자에 거부감이 컸다. 비매품, 비는 아닐 비(非)라고 배웠다. 판매하는 것이 아닌 물건을 비매품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비매품을 받으면 뭔가, 팔지는 않지만 얻게 되면 공짜로 얻는 그런 기분이 들어 좋다. 마트 행사에서 껴 주는 사은품과는 또 다른, 판매하지는 않지만 당신에게는 특별히 드리겠어요,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물건. 그래서인지 비매품이 손에 들어오면 선물을 받은 것 같다. 그런 비매품들 중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뭘까? 현재는 책 사고받은 노트들로 추정된다. 쌓여 있는 노트들, 메모장 같은 작은 수첩들 뒤편에 모두 비매품이라고 쓰여 있다. 아, 가장 소중한 비매품은 예전에 김연수의 신작, 소설가의 일을 예약 판매할 때 미리 주문한 고객에게만 주는 김연수가 쓴 ‘소설가의 산책’이란 문고 판형의 얇은 책이다. 이건 정말이지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본이다. 가장 소중하다. 사실 고백하자면 너무나 소중해서 아직 읽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게 2014년인데 말이다. 샴푸나 치약, 휴지 같은 비매품은 자주 받는다. 화장품 샘플 또한.
받은 비매품 말고, 내가 줄 수 있는 비매품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 약간 사방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에 정신이 산만해지고 있다. 히로의 알람은 언제쯤 울릴까 같은 의식의 흐름...) 나도 뭔가를 만들어 준다면, 이건 비매품인데 당신에게만 특별히 주는 거라는 마음을 담아내어 줄 수 있는 것. 그건 아마도 글이 되겠지. 얼마 전에 지숲이 나에게 여우 책방 책에 들어갈 원고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어제는 피넛을 인터뷰했고 어제오늘 피넛에 대한 글을 하나 썼다. 피넛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나의 인생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여겼던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 어렵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야기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피넛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짐작해 보는 순간, 그 순간 내가 쓴 글을 피넛에게 주고 싶었다. 헌정이라는 말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그의 인생에 그이의 삶에 살며시 올려놓고 싶었다. 나는 누구에겐가 그렇게 비매품 글을 바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뭐 언젠가 피노의 말대로 인세 수입을 벌어 자기만의 방을 만들 수 있다면야 더없이 좋을 일이지만, 지금도 괜찮다. 비매품, 판매는 하지 않지만 당신에게만 특별히 드리는 것. 글을 쓰며 걷는 당신의 시간,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삶, 어쩌면 그것은 도리어 내가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김연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 책을 읽은 이가 있더라. 훈련소 가는 버스에서, 터미널에서 휴가지에서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누군가의 시간에 나의 글이 있더라. 커피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커피를 마시며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커피가 영 내키질 않지만, 카페에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보니 그렇다. 아마도 나는 차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하나 보다. 그렇다고 별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메모를 하거나 책을 조금 뒤적이다 아이폰을 들여다본다. 메모처럼 단상을 이런저런 SNS에 쓴다. 그게 전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충전인가. 시큼한 맛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끝 맛이 고소한 게 낫다. 그리고 우유를 조금 넣어 목 넘김을 도와주는 커피 류의 음료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모르겠다. 어쨌든 커피는 매일 마시는 편이다. 신선한 원두를 내려 마시는 커피를 선호한다. 아메리카노는 왜인지 모르게 뒷맛이 텁텁하다. 드립으로 내린 커피는 조금 쓴 맛에 얼굴을 찡그리긴 해도 뒷맛이 깔끔해서 좋다. 라테는 참 좋아하는 겨울 음료였는데 이제는 우유를 넣으면 배가 불러 별로다. 이렇게 취향이 세심해질 줄이야. 나는 대체로 모든 것에 무감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틈새를 들여다보게 되었나 돌이켜 보니 글을 쓰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쓰다 보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결이 고와진다. 더 벼르고 싶지만 지금은 대강 여기까지 별러졌다. 나의 취향, 나의 맛, 내 몸의 상태를 아는 것. 아주 세세히 까지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직 나의 오장육부 위치 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다. 동네 커피 가게는 다 머릿속에 꿰고 있으면서 내가 매일 데리고 다니는 오장육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늘 가까운 것은 어둡다. 무심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무엇을 할 때 기쁜지, 무엇을 할 때 편안한지를. 커피도 그중 하나다. 이제 아주 쓴, 에스프레소를 마셔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