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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05. 2019

소개

처음은 어색하다. 어색한 처음이 쌓이면 좀 덜 어색해 질까 싶다가도 처음은 늘 같은 반복이다. 어색하고 또 어색하고, 가끔은 얼굴을 붉히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참 망설이게 되는 순간. 그런 처음의 시작은 소개다. 자신을 밝히는 말들. 딱히 할 말이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름과 사는 곳, 나이 말고 다른 것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처음, 그리고 한 번 들은 이름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나이도 그렇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 누군가에 대해 세세하게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까 그런 자기소개란 맨 앞에 쓸 법한 것들 말고, 다른 식의 소개로 다른 이를 기억하고 싶다. 이를 테면, 저는 산책을 좋아하는, 매일 아침 요가를 하는,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즘 존 버거의 산문집을 읽고 있는, 소설을 쓰려고 하는, 수영 영법 중에 접영을 가장 힘들어하는 누구. 그런 소개를 받는 다면 나는 다음부터 존 버거의 이름 옆에 그이를 떠올리겠지. 아침 산책을 할 때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요가 동작을 보면 또 누군가를, 그렇게 어떤 행위와 사물 옆에 그것을 좋아하는 이가 자연스레 놓이는 소개들. 재미있겠다. 

불과 이틀 전, 토요일에도 새로운 모임이 있었다. 기존에 하던 글여행이 이제 시즌3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사전모임을 진행했다. 처음 만나는 자리, 소개의 시간. 어떤 글이 쓰고 싶어서 온 것일까, 서로가 궁금한 시간. 사실 나는 궁금했다. 다들 뭘 쓰려는 걸까. 그게 궁금한 이유는 내가 모르겠어서 이다. 뭘 써야 할지, 어떻게 써 나아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금, 다른 이들의 말에서 뭐라도 하나 나에게 섬광처럼 스쳐가면 좋겠단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귀를 세우고 다른 이들의 소개를 들었다. 새로운 마음 앞에서 나의 처음을 생각했고, 그때의 내 소개의 말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나는 별에 별 말을 다 했던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이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나왔다.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당장 뭔가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듯 시간이 쌓이면 뭔가가 나타날 거란 믿음을 다진다. 시간은 뭔가를 감추고 흐리게 만드는 것 같지만, 실은 벼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더 선명해지고 구체적이 되며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있다.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시간이 하는 일인 그것.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쌓는 일이다. 

처음에 처음을 쌓고 쌓는다. 무너질 법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서투름이 서투름을 덮는 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서투름은 무엇을 무너뜨릴 수도 없다. 

전에는 나를 어떻게 소개했던가. 처음엔 어색했고, 얼버무렸고 그냥 그냥이라는 말로 퉁치고 갔던 소개의 시간들. 시간이 지나 소개의 자리가 쌓이니 소개의 내용이 보인다. 이제, 세 번째 글 여행에서 나는 나를 쓰는 사람이라 말한다. 이것은 두 번째 글여행이 마칠 무렵 내가 스스로에게 준 명찰이다. 언제고 쓰는 사람. 어디서든 쓰는 사람. 어색했던 ‘산책’이란 별명도 이제는 내 이름이 되었다. 쓰는 사람,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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