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일 그림의 서막

일일 일 그림 #1

by 산책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려서 올리는 모임에 들어갔다.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냐, 대체 그림의 ㄱ도 모르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릴 것인가, 같은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 우선 훌륭한 스승님이 계시고-그의 별명은 털끝만큼이라도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하여, 털담 선생이라고 불린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우리는 세 번의 모임을 가질 것이고 그동안 매일 하나의 그림을 그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세 번의 모임이 끝나면 매일 그리는 근육이 붙은 놀라운 사람들의 모임, '걍그리세'에 가입할 수 있다.

듣기는 많이 들었다.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걍그리세를 하고 있었고, 털담 선생님은 이미 365일 그림을 그려 책까지 내신 분이 아니던가. 나는 매번 귀동냥으로, 그림은 가끔 눈동냥으로 모임의 어마어마함을 간접 체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털담 선생님 전시회가 있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무려 거대한 드로잉 공책까지 구입해 왔었다. 이게 2018년 연말의 일이다. 어떤 책, 거의 대부분의 문제집이 그러하듯 첫 장만 풀고 쌓아두듯, 거대한 드로잉 노트는 첫 페이지만 그림 비스무리 한 것이 남았고, 이후 공책은 아이가 접수했다. 거침없이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하다 망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 아이가 하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나는 하지 못했다. 망칠까 봐, 종이가 내 깜냥에 비해 커서, 뭘 그릴지 몰라, 잘 그리지 못해 등등의 이유였다. 그리고 2019년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없이 흘러가고, 2020년 2월에 전설의 그룹 '걍그리세' 멤버가 되었다.

어제 우리는 산 전망-이 동네 값나가는 전망 중 하나-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붓을 들었다. 스승님은 세상 사람 모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을 준비하는 사람답게 휴대가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은 도구들을, 그렇다고 결코 내실만은 작지 않은 도구들을 준비해 오셨다. 손바닥 반 만한 팔레트, 물감과 물을 넣을 수 있는 워터 브러시가 들어 있는 작은 팔레트와 겁먹지 않아도 되는 크기의 손바닥 만한 노트. 두려워말라, 이것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점부터 이미 그림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어제 나는 노란색을 써서 원을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바탕을 푸른색으로 입혀 일일 일 그림을 완성했다. 색 위에 색이 덤벼도 두려워 말라. 또 다른 색이 탄생하리니. 그리고 붓이 당신의 그림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 줄 터이니, 나만 따라오너라. 시작은 털담 스승님을 따라, 그리고 어깨동무한 친구들과 함께 이제 시작한다, 일일 일 그림.

20200206 산책

이전 11화단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