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일 그림#2
브런치 글쓰기 카테고리에는 작가의 서랍이라는 게 있다. 쓰다 만 것들을 저장하는 장소, 그러니까 쓰다 만 글 모음집 정도 되겠다. 가끔 소재가 떨어졌을 때 작가의 서랍을 뒤적인다.
실제로 현실에서 작가의 서랍을 열면 쓰다만 원고가 쌓여 있을까? 가끔 오래전 영화를 보면 작가가 쓰던 원고를 서랍에 넣어두고, 어떤 작가는 넣는 것도 모자라 열쇠로 잠그기도 하는 걸 보면, 그곳은 보물 창고가 틀림없다. 그러니 작가의 서랍이란 네이밍은 요즘처럼 노트북으로 쓰고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이미지를 입혀 더한 향수와 로망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지니의 요술 램프 내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혹은 화수분 같은 존재 아닌가!
오늘도 습관처럼 브런치에 들어와서 작가의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 이곳에 묵은 글들은 이야기가 되어 세상에 나오기도 했고, 아직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되도록이면 많이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라도 미니멀 라이프 추구 중) 쌓여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끄집어 내 빛을 보게 하고 싶다. 빛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완성된 꼴로 이렇게 발행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
하지만 발행까지 가기 쉽지 않다.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 글이 대부분이다.
물론, 한참 그분이 오신 것처럼 일기 쓰는 것 마저도 신바람 나는 타자 소리를 내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날들도 있다.
검은색 키보드 위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늦으면 안 돼, 뒤쳐지면 안 돼, 어서 달려, 어서. 머릿속에 만들어 둔 문장이 사라질까 봐, 생각들이 날아갈 까 봐, 이 기분이 김 빠질 까 봐, 어서어서. 띄어쓰기 맞춤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달려가던 며칠.
그렇다. 그것은 단 며칠이다. 그러니까 새털처럼 많은 나날들 중에 단 며칠만이 그렇단 말이다. 그 말인즉, 그렇지 않은 날은 오히려 더 많다는 것이다.
아아아 글쓰기의 괴로움이여.
들여다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마음이 공격을 당할 때, 그것을 풀기 위해 자주 글쓰기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또 반대로 마음이 공격당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핸들을 꺾을 것인가.
글쓰기의 유용함에 대해 다들 많은 얘기를 해서 덧붙일것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만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많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으니까. 물론, 기다려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역시나 고유 값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떠나가기도 하고, 남기도 한다. 기다려줄 걸, 하는 후회는 언제나 뒤늦게 찾아오므로, 그때가 언제가 될런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오늘, 일일 일 그림의 두 번째 모임이 있었다.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갈 무렵 나는 깊은 괴로움에 빠졌다. 글도 안 풀리는데 그림은 보다 몇 배로 나를 좌절하게 했다(알에서 깨어 나오고자 하는 새의 고통쯤?). 걸음마 뗀 아이가 뛰고 싶어 바둥거리는 게 맞긴 하지만, 뭐랄까. 이건 내가 원하는 게 맞나? 나는 정말 그림에 대해 (글 만큼)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마음이 찾아와서 폭풍 같은 며칠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놀이로, 취미로 즐겁게 그렇게 그리고 싶었지만, 역시나 내가 생각한 순간의 특별함을 남기기에는 이상은 높고 실력은 역부족이고 시간은 가고, 다른 할 일에 가려져 그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그간 뭔가 대단한 그림을 그리나 싶은데, 찻잔, 나무 등을 그리는 게 전부다. 사람을 그리고 싶어, 사진 속 저 멋진 풍경도!! 이게 내 욕망이었고 실제는 뭐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서도.(말줄임표)
스승님은 오늘 말씀하셨다. 끝까지 버티는 거야.
사실 답은 나와있다. 글쓰기의 고단함에 대해 썼을 때도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핸들을 어디 쪽으로 꺾을 것인가.
나의 속도를 아는 이는 나 뿐이긴 하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이는 어쩌면 나 뿐만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