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첼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레슨을 받는 동안, 매일의 연습은 결심만 남았다. 하루 일과를 전 날 밤 돌려 보는 버릇이 있는데, 다음 날 연습을 계획했던 시간에는 늘상 예기치 못한 복병이 튀어나오고 (계획대로 되면 삶이 아니니까) 나름의 절충안이랄까, 그래도 일주일에 네 번은 첼로를 꺼내야지 하는데(반은 넘어보자는 결심) 다양한 이유로 결심이 실패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아이가 맨 처음 바이올린 배우러 갔을 때 그곳 선생님이 해 준 말, '아이가 연습하기 싫어하면 바이올린 꺼내서 안아보게라도 하세요.' 낯선 악기와 친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의 결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그 말을 내내 생각한다.
스트링 빌더 교본 1권의 앞장을 - 이제 개방현 다음에 D, A, E, B 음을 누르는 단계 - 배우는 꼬꼬마(이자 첼로 꿈나무)는 언제쯤 되면 선생님처럼 저렇게 멋진 반주를 할 수 있을까, 거침없이 현을 켜는 선생님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다 알면서도 부러운 그 마음. 흔히 악기를 배우는 것을 외국어 교육과 연결 지어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게 그런 거 아니겠나.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다 한국어에 능숙한 게 아니듯, 매일 첼로를 잡는다고 이게 과연 늘까 싶은 그런 의심이 불쑥 치고 올라오는 것은 어제 또 F#, C#을 짚었기 때문이었다. 악보를 읽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활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30분 레슨 시간 동안 (마스크 안에서) 한숨 쉴 틈도 없었다.
마음이야, (듣는 귀가 있으니) 세쿠 카네 메이슨 까지는 아니어도 레슨 선생님의 현 한 가닥이라도 따라가고 싶지만, 나는 아직도(여전히) 나만한 덩치에 네 개의 현을 팽팽히 당기고 있는 이 악기가 조심스럽다. 건드리면 무너질까(줄 풀릴까) 잘못 안으면 망가질까(브릿지 움직일까) 조심스러운 이 악기와 친해지는 시간이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내게 악기를 건네 준 악기점 사장님은 나를 응원하며 1-2년 하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도 할 수 있다고, 자신이 배우던 스즈키 첼로 교본 1을 선물로 건네주었는데, 하아. 과연 우리는 언제쯤 친해질 수 있을까. 이건 아마도 낯가림이 심했던 어린 날의 나와(지금도 농도는 연해졌으나 여전한 첫 만남의 두려움 영역) 무엇인가와 친해지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성향이 큰 몫할 것이다. 글쓰기 모임을 3년쯤 하고 나서야 마음이 노곤해지는 것도, 첫 작업실과 헤어지고 일 년 후에 그곳을 다시 찾게 된 것도. 나에게는 늘 뜨내기의 마음, 떠돌이의 마음이 있고 그것들이 시간의 무게를 안고 바닥에 안착하기까지는 시간 속에 숱한 시행착오와 갈등, 조심스러움, 예민함과 생각들이 켜켜이 들어차야 했다.
허나 돌이켜보면, 끝끝내 친해지게 된 것들은 내게 사이사이 시그널을 보냈다. 내 이름을 직접 부르기도 했고,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짙어진 나무 아래에서 글을 쓰자고 청하기도 했고, 휴일 저녁 불쑥 문자를 보내 술잔을 내밀거나 좋아하는 음반을 들으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도 했다. 소풍 가자, 음악 듣자, 글 쓰자, 술 마시자, 전 부쳐 먹자, 그림 그리자.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우리는 친해졌다.
현을 누르기 시작한 두 번의 레슨에서 첼로는 내게 왼손 검지가 살가죽의 아릿함으로 말을 건다. 굳은살이 생길 것처럼 맨질 해진 손가락이 시시때때로 말한다. 연습해야지, 굳은살 생길 때까지. 자판을 누르는 지금도 왼손 검지가 말한다. 오늘은 꼭 연습해라. (눈이 있다면 쌍심지를 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