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도, 너의 얼굴

아마도, 첼로

by 산책

일기가 격조했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여전히 배우고 있다. 이제 테이프를 세 개 붙였고 (개방현 외 세 개의 음씩 더 연주할 수 있다는 뜻. 16개의 계이름을 연주할 수 있다.) 어제는 슬러(한 활로 두 개의 음을 이어 연주하는 것)를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의 레슨은 땀 흘리다 보면 번개처럼 지나간다. 중간중간 선생님의 말을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해 두지만, 교습소를 나오면서 신발을 신는 동시에 사라지곤 한다. 더 어렸다면 다 기억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비슷했을 거다. 활을 동일하게 써야 한다는 것, 힘을 주는 것 또한 그렇다는 것 정도만 (반복해서 듣는 덕분에) 기억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힘 조절이다. 그리고 같은 양만큼 활을 분배하는 것 역시. 여전히 활을 잡는 것은 어려워서 (근육이 생기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악보를 쫓아가다 보면 활 잡은 손이 엉망이 되거나 활을 제대로 잡으려다 보면 악보를 놓치거나 현을 제대로 못 누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고 있다,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걸.


지난 시간엔 연습 열심히 해 왔다고 칭찬받았다(고백하자면 예습도 했다. 선생님은 모르실거다...예습까지 해 가야 그 정도 실력인 것을. 눈물 좀 닦고). 신기하게도 그 주에는 연습을 하면 할 수록 스스로도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칭찬 받은 레슨 이후 연습 주간(이번 주)에는 평소 보다 연습을 더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기만 했다. 발전의 가능성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달까. 해서 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수업을 받았는데, 역시나 될 대로 되고 말았다. 안 되는 부분을 계속 안 되고 버벅대는 부분은 쭉 버벅거렸다. 지난 시간에는 마치 활에 뭔가 씐 듯 절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는데(심지어 소리도 잘 나), 그것은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 같은 것이었나 보다. 이제 운은 끝났다는 걸 완전 절감한 어제, 선생님은 뒤로 갈 수록 더 어려워진다고...(어디로 가야하죠, 저는)


그 사이 굳은살이 두 번 이나 생기고 벗겨졌는데! 굳은살 배겼다고 소리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 이제 그런 걸 모를 나이도 아닌데 굳은 살을 방패막처럼 믿어보려 했다. 흠... 무엇에 기댄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얼마 전까지 재미있게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송아가 떠올랐다. 그녀가 굳은살과 목 상처를 얻으면서까지 사랑한 바이올린이었지만 얻을 수 없었던 재능에 매번 좌절했을 젊음이 살풋 이해됐다. 4수 끝에 음대에 들어가 매년 실기 꼴찌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달고 동기들을 바라볼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고작 3개월 배운 나도 이러할진대...(드라마에 과몰입했더랬는데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임을 중간 고백함.)


그렇다. 굳은 살 만큼 소리가 느는 건 아니다. 굳은 살 만큼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고. 굳은살 뜯고 올라오는 새 살 만큼 쓰라리다. 신경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마스크 같다고 해야 하나, 한 겹의 막이 덧붙여졌을 뿐 숨은 같이 쉰다. 그러니까 소리도 같고 상처도 같다. 좌절의 경험이 는다고 해서 교훈이 느는 것도 아니다. 실패의 경험이 쌓인다고 성공의 기회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시도를 반복하는 것. 그러다 생기는 굳은살은 과정의 하나일 뿐, 그게 나의 결과를 말해주지 않는다. 귀찮고 싫은 마음을 엉덩이 밑에 깔고 시도의 뒷덜미를 붙들어 무릎에 앉히고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 안 되는 것, 내일도 안 될 수 있겠지만 하던 일을 하다 보면, 가던 길을 가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운’이라는 걸 만날 수도 있으니까. 운을 마주칠 기회를 쌓아나가는 것은 결국 계속되는 시도다. 삶이 어떤 그림의 카드를 내밀지는 모를 일이니까.


뒤집고 또 뒤집다 보면 너도 어떤 얼굴이든 보여줄테지.


오늘도 오른손 엄지의 굳은 살을 뜯어내며 첼로를 꺼낸다. 위키피디아 왈, 3-4년 꾸준히 연습하면 들어줄 만한 소리가 나온다니까, 2024년에는 하늘을 나는 2020 원더 키디처럼 첼로 위를 나는 활잡이가 되어있을 거야. (주먹 불끈!)



이전 16화굳은살이 거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