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첼로
자판을 두드리며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서랍에 넣어두었다. 가끔 꺼내 그때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12월 17일의 나와 1월 4일의 나, 1월 7일에는 이랬던 나를.
그건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다. 막상 맨 얼굴로 앉아 있을 때는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일들이, 헌 옷이 새 옷으로 둔갑한 것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제1 독자 아닌가.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내 글의 제1 독자가 나라는 것, 내 연주의 제1 청중이 나라는 사실은 아주 소중하고도 벅찬 일이다. 처음을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나라는 것. 처음을 아는 사람은 성장을 알고 있다. 내일의 달라진 나를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 역시 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 나의 달라짐을 가장 기뻐하고 뿌듯해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아, 물론 나의 지질함을 가장 잘 아는 것 역시 나이긴 하지만 지질함은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건 인지상정이니까 이것 또한 내가 먼저 아는 게 낫지 않겠나, 남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보다는 말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기를 '발행'해 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오늘 첼로 레슨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휴원 한 한 달 반 동안 격조했던 나의 첼로 일기, 눈물 좀 닦고 시작해보자.)
마지막 레슨을 받고 학원이 휴원 했고, 때마침 악기가 말썽이었다. 징징징 하는 현의 떨림이 귀에 거슬려 연습이 어려워졌다. 버징이라고도 하는 그것이 귓가에서 울려 퍼지니 가뜩이나 아름답지 않은 음들의 향연인 첼린이에게 이것은 연습을 미루는 좋은 핑곗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해서 첼로를 들춰메고 수리점을 찾아갔다. 건조해서 지판이 높아진 거라고, 브릿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수리비는 8만 원. (흑... 눈물 한 번 다시 닦고) 가습기를 잘 틀어두라고 했다. 댐핏도 샀다.
자, 그렇게 해서 나의 취미는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했다. 보통 5,6일에 한 번 댐핏에 물을 보충해준다면, 건조한 우리 집에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물 보충을 해야 했다. 게을러서 댐핏을 잊어버리고 뒀다가 지판이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댐핏을 하나 더 샀고, 물 보충은 5,6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까다로운 악기인 걸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까...(아니겠지, 우린 운명이었을 거다) 차라리 집에 얌전히 놓인 피아노를 배울 걸 하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이 나이에 동네방네 첼로 배운다고 떠들어댔으니 적어도 3년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며 돌아서려는 마음을 다독여 부지런을 떨기로 했다.
먼지 쌓인 가습기를 닦아서 첼로 옆에 틀어두고 돌아서면 댐핏 생각, 수시로 브릿지에 자를 갖다 대는 내 모습이 나도 낯설었다.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인간이었나. 아니면 나이를 먹을수록 좀 더 괜찮아지는 것일까. (후자라고 해 두자)
오늘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선생님께서 '연습은 재미있으세요?'라고 물으시길래 '어제 안 되는 부분이 오늘 하면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해요.'라고 대답했다.
악기 연습의 놀라움은 (그래서 그만두지 못하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어제 되지 않던 부분이 오늘 되는 것. 오늘 완전히 되지 않아도 어제 보다 나아짐을 느끼는 것.
그렇다. 이 또한 내가 내 연주의 제1 청중이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어제 들었던 음과 오늘의 음이 다르고 어제의 운지와 오늘의 운지가 다르다. 나는 나의 발전을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신비한, 기적 같은,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뒷배인지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매일의 반복, 매일의 시도를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기운 빠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나의 태생부터 존재한 그림자 같은 '내'가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 지구를 채우고 있는 슬픔의 공기가 반은 줄어 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