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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Nov 22. 2021

한정판 일상

달려라, 산책


아이가 자가 격리자가 되었다. 같은 반 등교한 친구가 확진되었다고 했고, 기준을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한 반 전체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보건소에 문의하니 동거인까지는 관리 기준에 들어가지 않고, 소속 기관의 규정에 따르라고 했다. 당연히 학교는 등교 중지. 나는 그 주에 예정되어 있던 수업과 일정을 취소하고 자가 격리자의 충실한 동거인이 되었다. 열네 살 아이는 방에서 혼자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는 아이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 반쯤 누워있다가 방문 앞에 놓인 식사를 받아 들고 들어갔다. 손잡이에 뿌리는 소독약을 수시로 분사하고 아이가 마실 물은 동네 생협 친구에게 부탁해 박스째 들였다. 보건소에서 준 주황색 쓰레기봉투를 아이 방 안에 넣어주고 시간마다 환기를 하고, 마스크를 쓴 채 대화를 하는 그런 생활.


예상한 적 없는 상황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그날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열리는 사진 전시를 보러 갔어야 했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 뜻대로 되었던가. 전시회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나마 위안은 그보다 한 주 전에 꼭 가려던 전시를 보고 왔다는 것. 나는 그날 밤 사진첩에 남은 지난주의 풍경을 다시금 뒤적였다. 회색의 차가운 질감을 가진 스테인리스를 조형해 가구 겸 오브제를 만드는 작가, 황경신. 낯선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파란 카펫 위에 올려진 그의 조형물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처럼 결을 갖고 있는 그의 작품이 빛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물결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변주가 한 면에서 일어났다. 작가는 사포로 결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정했고 그래서 따뜻했다. ‘의자예요. 평소에는 장식처럼 놓았다가 이렇게 끌어다 앉으면 되는 거죠.’ 은빛 금속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손에 닿는 촉감 또한 차갑지 않은 결이 느껴졌다. 부드러웠다.


옆 자리의 관람객이 작품의 가격을 물을 때 나 역시 흘깃 거리며 작품 리스트의 가격을 보았다. 3단  빗면의 조형물은 예상을 뛰어 넘었지만, 의자의 가격을 보고는, 그래? 비싸단 말 대신 그렇다면 어디 한 번? 하며 통장의 잔고를 넘겨본 순간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결제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하아...) 같은 결과 모양, 같은 만듦새는 존재하지 않는 그것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한정판.


확진이 된 친구는 증상이 나타나고도 며칠을 더 등교했다는 걸 알았고, 당장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도 마지막까지 조심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나서 할 수 있는 건 자발적 고립이었다. 큰 아이와의 공간을 분리시키고 자가격리 동거인의 신분이 되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오전 나절은 교육방송을 시청하는 일, 끼니를 방 문 앞에 챙겨 놓아두고, 설거지부터 수건과 빨래를 따로 돌려야 하는 일을 삼 세 번씩 세 번쯤 했을 때 나는 점차 무기력과 분노 어느 사이에 있었다. 해 질 무렵, 산책하는 이가 없는 시간에 나가 양재천을 뛰면서 알았다. 이 감정은 우울감이었다.  

시작점에서부터 나는 지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늦가을의 노을, 관악산 산등성이 위로 자줏빛과 보랏빛이 물결처럼 펼쳐지는 순간, 단풍의 자줏빛과 노란 은행잎, 가을의 모든 색을 담고 있는 벚꽃 나무의 낙엽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땅을 보며 달리던 나는 알았다. 이 계절이 주는 한정판을 좀 더 누리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하는 지금에서 오는 안타까움, 그럴 수 없는 상황, 어쩔 수 없는, 내 의지와 관계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만든 우울이란 것을.


비루한 통장의 잔고로 비록 마음을 홀린 의자는 가져올 수 없지만, 나는 내 의지대로 계절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되다니. 그렇다고 완전히 무릎 꿇기엔 살아온 이력이 있지 않은가. 절망과 좌절, 포기와 체념, 슬픔과 비애의 순간에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사이사이에서 나를 달래는 소소한 취향이었다. 운명의 가격은 접근도 상정도 불가하지만, 이 계절의 한정판은 내 깜냥 안에서 충분히 취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늦가을과 초겨울에만 나오는 시즌 음료인 토피넛 라테를 마시기 위해 평소 뛰던 거리보다 1킬로미터를 더 뛰어, 역시나 이 계절에만 걸을 수 있는 10단지 노란 은행나무 길을 지나 동네 카페에 갔다. 토피넛 토핑을 추가하고 뜨끈하고도 달콤한 커피로 속을 채우며 돌아오는 길, 식어가는 땀에 머릿속이 초겨울 새벽처럼 쨍해졌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한정판들로 여기를 채우는 일, 그게 내가 쌓아온 커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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