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을 동경했다. 직업을 갖게 된다면 별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결심을 했었다. 별 다른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구과학 선생님이 나를 다정하게 불러줬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학창시절에 41번이란 번호가 아니라 ‘@@아‘라고 나를 불러줬던 흰 얼굴의 깡마른 지구과학 선생님은 엉뚱했다. 자전거를 생전 처음 타는 날 브레이크 잡는 법을 몰라 공사장 벽으로 돌진했다고. 차에 부딪히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나. 그런데 몇 달을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정도의 큰 사고 였다고 했다. 어떤 아이들은 ‘지구과학, 바보아냐?’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죽진 않았잖아. 차에 부딪혔다면 죽었을거야. 지구과학은 바보가 아니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은 날, 지구과학 선생님이 단번에 좋아졌다. 특활 시간에 지구과학 반에 들어간 학생은 2명 뿐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 주었다.
유일한 2학년 두 명은 축제 기간에 태양계 행성의 특징을 설명했다. 지구 과학 부스는 한가했다. 떡꼬치와 풍선 던지기가 있는 축제에 태양계는 별 볼일이 없었다. 축제가 끝나고 나서였나,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자신의 후배들이 하는 천체관측행사에 참석했다. 낙성대역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들어간 학교에서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남청색 하늘과 연두 빛이 농익은 잔디밭과 초록 나무 길을 지나서 노란 불빛들이 곳곳을 밝힌 캠퍼스 안에서 우리는 달을 봤다.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대학생이 천체 망원경 옆에 서서 망원경에 눈을 댄 우리에게 뭐가 보이냐고 물었다. ‘회색 분화구요.’ ‘달 뒷면에는 더 많은 양의 크레이터들이 있고, 현무암 마그마 분화가 그 원인일 수 있는데 가설일 뿐이지만, 어쨌든 달의 앞면에는 달의 바다가 많다’는 설명을 들었다.
‘달의 바다요?’
엄밀히 말하자면 물이 없으니 지구 같은 바다는 아니지만, 검은색으로 보이는 부분을 달의 바다라고 부른다. 케플러가 명명했고, 이후 달에는 스물 세 개의 바다가 있다.
토끼는 없지만 바다가 있는 달, 물은 없지만 바다가 있는 달. 아름다운 것은 지구 밖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2.
“저기 보이지? 저 별들을 연결해봐. 더블유 자로 되잖아, 그게 카시오페이아야.”
선배는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선을 연신 연결해줬지만 어딜 봐도 내 눈에 더블유는 보이지 않았다. 무수한 별 무더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에 떠난 관측회에서 나는 목이 꺾어져라 하늘을 바라보며 선배가 말하는 더블유를 찾았다.
“저기 봐. 자 이 손가락을 따라서 한참 시선을 고정하는 거야. 제일 밝은 별을 찾아야 돼.”
선배의 손 끝을 따라 하늘에 시선을 고정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손가락만 보고 있었다.
“혹시 피아노 치세요?”
“아니, 나는 기타 치는데.”
탈락. 다시 손가락 끝을 향해 가장 밝은 별을 찾아 시선을 보냈다.
“오오, 저거!”
어느 순간 짙은 남빛 하늘에 더블 유 모양의 노란 빛이 새겨졌다.
“평생 안 잊어버릴 거다. 저게 닻별이라는 거야.”
“밤새 카시오페이아 하나 찾다 끝나는 줄 알았다. 자, 그럼 저기 북두칠성 보이지? 저 손잡이를 동쪽을 향해서 쭉 내려서 반원 모양으로 연결하면 목동자리의 주황색 별이 나와. 찾았어?”
다 같은 색과 다 같은 밝기로 보이는 별들 속에서 선배는 주황색 별 아르크투루스와 처녀자리 스피카를 찾아 연결 하라고 했다. “그게 봄의 대곡선이야, 거기에 사자자리의 데네볼라를 연결하면 봄의 대삼각형이 되지. 거의 정삼각형에 가까워.”
그게 그거 같은 별을 찾느라 피로해 진 내 눈은 반쯤 감겨 별이고 뭐고 간에 민박집 방에 들어가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드러누워 올려다 본 하늘은 까맸고 등은 축축했다. 목동이니 사자, 백조 자리에 얽힌 신화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진즉에 사라졌고, 함께 관측회에 온 동기와 선배들은 오직 별자리와 별의 이름들만을 읇조렸다.
낭만이란 무엇인가, 동경이란 무엇인가 하다가 윤동주가 불렀던 그 이름들을 떠올리며 선잠에 들었다.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3.
스카이라인 지형이 바뀌어버린 동네는 특히나 밤이 아쉽다. 고층 아파트 불빛 사이에 묻어버린 청록색 밤하늘의 별빛, 내가 아는 유일한 별자리 몇 개, 카시오페이아, 북극성, 오리온 같은 것들을 찾기 어려워진 좁은 하늘 때문이다. 머리 둘레로 둥근 장벽이 세워졌다.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던 어느 밤에 습관처럼 하늘을 보다가 낭만과 동경이 자취를 감추었구나, 한탄을 하고 있는데 마스크 틈새로 라일락 향이 밀려 들어왔다. 지나는 행인이 없으니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진하지도 않은 라일락 향을 좇아 킁킁거렸다.
마가렛이에요.
연보라색과 짙은 보라색이 농도를 달리하며 흔들거리는 라일락 나무 앞에서 나는 목소리를 듣는다. 마가렛(margaret)의 r 발음이 유난히 높았던 205호 아주머니의 목소리.
잘 지냈어요? 마가렛이에요.
아주머니는 얘기했었다. 사람의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아요.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린다. 브레이크 잡는 법을 몰라 공사장으로 돌진 했던 지구과학 선생님과 달리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 달려오는 차와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취한 밤에는 누구든 사라진 사람들이 그립고, 연산홍, 철쭉, 진달래, 라일락, 그 무엇이든 그들도 다시 피어나 주면 안 되는지 바라게 되는 봄 밤에는 이 말을 떠올린다.
지구 밖에도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