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 May 26. 2024

너는 예쁘다

오래된 포옹


1.

5년 만 이었다. 바다 위에서 내려 본 제주의 마천루가 낯설었다. 고층 아파트와 아파트가 무리지어 있었다. 예전을 추억하기에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간 알고 있던 제주 지도에 업데이트를해야하는순간.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한 것들은 반가움으로 새로운 것은 설렘으로, 변한 모습 마저도 그의 것이므로 그게 뭐든 받아들이겠단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해가 지는 서쪽 바다는 그대로 였고 진한 오렌지 빛 하늘이 청남빛 바다 아래로 사라지는 순간 역시 내가 알던 제주였다. 그래, 넌 여전히 예쁘구나. 협재 해수욕장에서 맞는 바다 바람도 바다 건너 비양도도 묵묵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도 모두 아름다운 한 장으로 남았다.




2.

새학기가 한 달여 쯤 지난 교실에서 여자 아이가 창 가 옆자리 짝궁을 바라보며 말한다. “참 예쁘다!” 여자 아이의 짝궁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한다. ‘내가 예쁘다고?’ 예쁘다는 게 어떤 걸까, 아이는 종일 예쁘다는 말을 되뇌인다. ‘내가 예쁘다고?’ 밥을 먹으면서도, 엄마 심부름을 하면서도 아이는 예쁘다는 게 뭘까, 그려본다. 짝궁에게 들은 말이 아이를 ‘예쁜 것’의 세상으로 이끈다. 황인찬 시인의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 속 주인공은 그렇게 무엇이 예쁜지 찾기 시작한다.




3.

예쁜 것, 내 마음에 드는 것, 그래서 자꾸 보게 만드는 것, 보면서 감탄하고 종내 눈물 마저 글썽이게 만드는 것, 그렇게 내 마음 한 쪽을 걸어두는 것, 그런 것들이 제주에 있다. 비양도, 백년초 선인장의 보라색 열매, 하얀 모래알과 사람들이 쌓은 현무암 돌탑이 있던 해변, 민트색과 청남색의 바다와 같은 색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무리 같은 것. 그리고 바다를 사는 사람들. 제주에 온 첫 날 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최연소 해녀인 희선씨가 알려 준 제주의 바다. 파도가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 갈 수 있는 바다에서 3분 여 동안 잠수를 하며 희선씨와 삼춘 해녀들이 길어 낸 채집물과 이들의 삶은 마치 무명실로 엮은 것 처럼 단단히 이어져 있다. 바다에서 뭍으로 뭍에서 바다로 그리고 생에서 생으로.  




4.

돌아와 동네를 걷는다. 5층 짜리 납작한 아파트 자리에 새롭게 자리잡은 길쭉한 새 아파트와 공사용 천막을 두르고 한층씩 해체 중인 15층 아파트 단지를 지나 1단지 종합 상가로 들어선다. 재건축으로 사라지고 새롭게 지어진 건물 사이에 네모난 섬처럼 부유하는 곳, 이 섬에도 제주도와 같은 그런 것이 있다. 군데 군데 부서져 돌처럼 깎인 계단과 그 옆에 서 있는 키 큰 대추나무,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 제 키보다 큰 빗자루를 들고 붉은 타일 복도를 쓰는 아이, 구름과 하늘이 번갈아 보이는 갈색 알루미늄 창,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양철 지붕. 이것 모두를 엮고 거기에 내 마음 한 쪽을 꿰어 걸어 둔다. 바람에 흔들리고 빗방울에 젖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알록달록 예쁘다.


5.

그림책 속 여자아이가 예쁘다고 한 건 운동장 벚꽃이었다. 짝궁은 사실을 알고 나서 얼굴이 빨개진다. 심통을 낸다. 하지만 또 곰곰이 벚꽃을 바라 본다. 벚꽃이 예쁘구나. 실재 만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과 이야기가 깃들어 더 예뻐지는 것이 있다. 짝궁에게 벚꽃은 아마도 두 번째 일테고 내게 제주 바다와 동네 상가가 그렇다.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며 이야기를 찾아본다. 예쁜 것이 더 많아 진다. 미간을 잔뜩 붙이고 입을 꾹 다문 아이도, 성글게 엮은 테왁도, 피아노 학원 앞 계단에 놓인 파란색 책가방도, 흰벽 위 그림도.   


*

매거진의 이전글 모나에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