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과의 결별

진짜에 가까워 지기 위해

by 산책

보통 꿈을 기억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데 오늘 아침에는 꿈속에서의 기분까지 생생해서 이를 닦는 동안, 머리를 감는 동안, 이불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내내 생각났다. 잠을 자는 동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다닌 게 실제 같았는지, 밤이 없이 쭉 하루가 이어지는 기분이라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진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음에도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 지금 필요한 건 커피가 아니라 다음 장의 시작을 위한 마침표 같은 휴식일 지도 모르겠다.


꿈에서 나는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흔히들 장래희망이라고 하는 것, 커서 뭐 될래?라고 묻는 그것 말이다. 일 년 가까이해 오고 있는 운동은 관성이 되었는지 더 이상의 신체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하루하루 사는 건 더 팍팍해지고 오늘은 내일의 카드값을 걱정하며 정작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내일을 위해 미뤄둬야 하는 처지에 누군가 물었다. 어릴 때 꿈이 뭐였어? 글쎄, 꿈이라. 난 뭐가 되고 싶었더라. 그렇게 기억을 찾아 올라간 곳에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조차 무리들에서 떨어진 미운 아기 오리 새끼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절대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세계 속의 그들을.


어쩌면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은 나의 희망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의 기대와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어린아이의 '허영'이었는지 모른다. 뭔가 대단해 보이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고 자랑스러운 자식이고 싶었던 시절의 장래희망. 그러니까 장래희망 자체가 꿈이었다. 그런 삶을 꿈꾸었던 어린아이의 꿈.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희망 사항. 진짜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진짜를 만들지 못했다. 이유는 꿈과 내가 일직선에 놓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꿈은 꿈이었고 나는 나였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라 믿었던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한 치수 작은 옷을 억지로 구겨 넣은 거울 앞의 우스꽝스러운 나를 보았다. 조금만 더,라고 하며 숨을 잔뜩 들이마셔 버튼을 잠갔지만 이내 툭, 바닥에 떨어진 단추.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으면 되는데, 돈을 쓰지 않을 궁리를 하면 되는데, 늘 반복하는 후회지만 지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고 있음에도 과거의 어떤 것을 미래의 무엇을 자꾸 떠올린다. 그런 중에 바닥에 떨어진 단추처럼 작은 소리로 나를 두드리는 것들이 있다. 자자, 여길 봐. 지금 하려는 게 무엇인지.


'브런치는 작가님의 소중한 꿈을 응원합니다.', 무심결에 열어 본 한 통의 메일 제목이, '길 떠나 헤매는 오늘은 풍경이 될 거'라고 오랜만에 찾은 공연장에서 모두 함께 불렀던 마지막 곡의 가사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똑똑똑' 머리와 마음의 언저리를 두드렸다. 가지 못한 길을 거쳐온 시간 역시 지금이 되었다. 갖지 못한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지금 갖고 있는 것과 더불어 내가 되었다. 희망처럼 달콤한 맛은 없지만 오도독 부서지는 맛이 있는 '지금'.


상실은 회복과도 같다. 상실을 겪은 후에야 부모의 꿈에서 벗어날 수 있고, 타인의 시선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쪼그라드는 어떤 날은 그렇게 무의식 중에 꿈속에서 허덕이기도 하지만, 무리에서 떨어져 또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어젯밤 꿈속의 나는 이제 완전한 결별을 이룬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앉아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은 진짜에 가까워지기 위해 헤매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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