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은 갈등 피하기 선수다. 여럿이서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비교적 빠르게 감지한 후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한다. 특히 부모님과 밥을 먹다가 엄마의 언성이 높아지면 둘 사이를 중재하며 치솟는 데시벨을 잠재우거나, 문을 닫고 혼자 방으로 들어간다. 이런 타고난 예민함 덕분인지, 올해로 27세가 된 프롬은 지금까지 N명의 남자와 2년씩 사귀면서도 싸운 횟수는 손에 꼽는다. 어느 한쪽이 언성을 높인 적도, 눈물을 뚝뚝 흘린 적도 드물다.
이별의 순간에도 프롬은 격정에 휩싸이지 않는 편이었다. 남자친구 J가 입대 후 두번째 휴가를 나왔고, 다른 여후배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프롬은 J에게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종이 한 장을 꺼내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누구의 잘못인가? J의 잘못이다. J는 왜 그랬을까? 마음이 떴거나, 그 후배에게 마음이 동했거나.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예상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 전부 오해임이 밝혀지거나, 오해가 아닌 사실이라면 J가 프롬에게 사과하고 관계를 이어가거나, 관계를 끝내거나. 그중 마지막 시나리오는 최대한 피하자는 마음으로 프롬은 J를 불러냈다.
“너 휴가 나오자마자, 나 말고 걔한테 먼저 만나자고 했더라?”
J는 입을 열지 않았다. 프롬이 시킨 뜨거운 커피가 다 식어 빠지고 J가 시킨 커피의 얼음이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프롬과 J 사이에는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J에겐 오해를 풀 의지도, 사과할 마음도 없어 보였고, 프롬은 ‘헤어지자’는 말을 뱉었다. J는 바로 알겠다고 했다. 그 누구도 소리를 지르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2년간의 연애가 끝이 났다. 귀책 사유도 명확하고 서로 구질구질하게 감정에 휩싸이지도 않은, 매끈한 마무리였다고 프롬은 생각했다.
프롬의 이별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사소하게는 맞춤법을 중시하는 프롬 앞에서 돈이의 맞춤법 오류가 도를 넘었을 때, 심하게는 훈이가 술에 취해 프롬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소리를 지르며 집에 못 가게 구속했을 때 프롬은 갈등을 직감했다. 하지만 아무리 두려움과 분노가 차올라도 프롬은 그 자리에서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혼자일 수 있는 공간에서 책상 위에 커피 혹은 독한 술 한 잔과 종이, 펜을 준비하고 예상 시나리오를 적어 내려가며 두려움과 분노를 삭였다. 상황이 A처럼 흘러가면 이렇게, B 방향으로 흐르면 이렇게… 분노와 슬픔을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촉과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다년간의 훈련 덕분에, 연애 중에도 제로-분노, 제로-갈등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다 프롬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된다. 프롬이 혼자 시간을 가지려고 할 때마다, 류는 항상 ‘지금 여기서 얘기하자.’라고 설득했다. 한 번은 류와 즐겁게 데이트를 하려고 그의 집에 갔는데, 밥을 배불리 먹은 덕분에 류는 잠이 들었다. 10분만 자겠다며 알람을 맞추긴 했지만, 알람이 울리고 프롬이 깨웠음에도 그는 30분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프롬은 류를 집에 두고, 홀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때 류가 잠에서 깼다. 류는 어딜 가냐 물었고, 프롬은 혼자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오겠다고 했다. 류는 왜 혼자 나가냐고 물었고, 프롬은 대답했다. ‘잠이나 더 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류는 왜 그러냐, 화가 났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화 안 났다. 잠이나 더 자라. 나갔다 오겠다.’ 뿐이었다. 류는 왜 그러는지 이야기해달라고 끈덕지게 요청했고, 30분 넘는 실랑이 끝에 결국 프롬과 류 둘 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난 너랑 놀려고 왔는데, 그 시간에 넌 잠만 자냐? 그럴 거면 나 왜 오라고 했어.”
프롬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프롬은 스스로가 구질구질하다 느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차라리 혼자 있을 시간을 줬으면 감정과 에너지를 이렇게나 소모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프롬과 마찬가지로 눈물 콧물 쏟은 류는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프롬은 뭐가 고맙다는 거지, 바보인가? 그냥 하는 소리인가?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길 듯 말 듯 할 때마다 프롬은 혼자 있으려 했고, 류는 “자꾸 혼자 두면 헤어질 생각까지 다 하고 오잖아. 대화를 해서 풀어야지.”라는 말로 프롬을 설득했다. 충분히 설득력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말이어서 프롬은 밑바닥을 내보일 때까지 류와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류에게 잔뜩 화가 나서, 어떻게든 이겨 먹겠다고 말을 토해냈을 때 류의 한 마디는 프롬의 입을 다물게 했다.
“협상도 아니고, 잘해볼 마음은 있는 거야? 싸우든 차분하든 각자에게 중요한 부분이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보자.”
류와의 연애 2년 차 까지 프롬은 ‘이 남자는 왜 나를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걸까?’라며 답답해했고, 3년 차엔 ‘어차피 혼자 있겠다고 해봤자 대화하자고 할 텐데’라며 반쯤 포기했으며, 4년 차인 지금은 밑바닥 내보이며 지지고 볶는 게 구질구질하긴 하지만, 썩 나쁘진 않다고 느낀다. 혼자 상상하고 혼자 속 썩어가며 관계까지 파탄 내는 것보단, 좀 힘들고 스스로가 구차하게 느껴져도 누구 하나 억누르거나 폭주하는 일 없이 관계를 탄탄하게 꾸려나갈 수 있다는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까지 얻었다.
“고통은 결속이다. 모든 고통스러운 상태를 거부하는 사람은 결속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오늘날 우리는 고통을 줄 수 있는 깊은 관계를 피한다. 모든 일이 고통이 억제된 안락구역 안에서 일어난다.
<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을 때 프롬은 류를 떠올리고는 맞는 말이라며 밑줄을 쫙쫙 긋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은 바로 다음 날, 프롬은 친구에게 “부디 비즈니스 대화 같은 상호작용으로 사람들과 깊고 원만한 관계 가져가며 천수 누리소서^^;”라는 문자를 받았다. 여전히 프롬은 본능적으로 갈등을 피하지만, 괴로워도 밑바닥을 내보여야만 관계가 깊어질 수 있다고 믿으며 어제보다 오늘 더 구질구질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