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더라도
함께 있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어지기도 하잖아. 차가움과 고독이란 엔트로피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 외로움을 느끼다가도 어느새 무심해진 나를 발견하곤 해.
무엇이 날 무심함으로 이끄는 걸까. 그것은 바로 바쁨이야. 내게 닥친 일들에 휩싸이는 거야. 나를 감당하기에도 벅차서 그렇게 된 적이 있었어. 내 눈앞에 너무 많은 일들이 쏟아져서 나는 아주 좁은 영역에서밖에 살 수 없었어. 나와 가족 사이만을 오가며 살아가는 거였지.
그런데 내가 나에게 고여있다 보면, 내 속에서 나의 문제만이 점점 커지고, 심각해지며, 나의 감정만이 중요해지더라고. 그렇게 마음이 가난해지고, 나누어줄 마음이 없어져. 나에게 모두 써버린 거야. 살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거나, 그럴 필요가 있는 때도 있긴 해. 당장 내가 힘든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거야. 누군가를 나에게 담고 싶다면, 누구보다도 나를 우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 그래야 내가 나누어줄 힘과 다정함도 생길 테고.
정말로, 결국 괜찮아지고 나니,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침투해 보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대방을 발견해 내고 싶어. 그저 스치듯 지나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명확하게 맞닥뜨리길, 분명하게 만나기를 바라는 거야. 마치 영화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만나는 것처럼.
무엇이 우리 마음의 불씨를 살려 줄까. 한마디의 말과 한 번의 눈길로, 그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작은 관심을 고빈도로 표현하다 보면, 우리 사이에 형성된 중력장이란 방이 뜨끈하게 데워지는 거야. 우리는 따뜻해지는 거야. 커다란 하나의 행복보다 여러 개의 작은 행복에 더 기뻐할 수 있는 것처럼, 작은 관심도 차곡차곡 쌓이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야. 무언갈 잘하는 사람도 좋고, 재미있는 사람도 좋지만, '함께하고 싶다'는 표현에 무엇보다 어울리는 건 따뜻함인 것 같아. 내가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랬던 것 같네. 다시 보고 싶거나,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은 평가, 판단하지 않는 사람. 그냥 나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 그러기 위해서 조금은 성숙한 사람.
또, 따뜻한 표정을 지어 보내는 사람. 잘 듣는 사람. 진심을 담아 최대한 개연성 있으면서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 그리고 조금이나마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 생각하면서 뭔가 신박한 게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작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데다가, 그런게 진심이 아닐까 해. 무언가 대단한 걸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의 행동을 의식하는 것보다, 정말 순수하게 누군가를 소중하게 대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건. 우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해.
누군가와 치열하게 많은 것을 주고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너무 많은 걸 주고받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도 커지고 종국에는 의도치 않게 관계가 힘들어지기도 하잖아.
실패하지 않는 기대가, 실망하지 않는 기대가 있어. 바로 상대가 해줄 수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카뮈가 말했어. 예를 들면, 그저 말없이 나와 함께 해 주는 것 정도. 나 또한 어렵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일이야.
너무 많은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물을 많이 주려다 오히려 식물의 뿌리가 썩기도 하니 우린 너무 많은 걸 주려고 할 필요가 없어. 때때로 누군가를 떠올려보고, 그 사람이 내 눈 앞에 있을 때 이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한마디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많은 걸 주고 싶어. 생에 한 번은 폭발적으로 나의 애정을 쏟아붓는 존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누군가는 마음만은 크게 사랑하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보다는 적게 주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쏟아부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교훈을 얻었을 테지만, 나는 그 교훈을 온전히 이해할 정도로, 받아들일 정도로 쏟아부은 적이 없는 것 같네. 조금은 계산적이고 방어적이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일단은 쏟아부어 보려고.
겪어보기 전에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모르겠어 나는. 사람마다 정답은 다르니까 일단은 내가 해봐야겠어. 그 교훈이 나에게 정답일지는 이후에 깨닫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