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아프거나 아팠던 적이 있니? 누구나 한 번쯤은 걸리게 되는 수준의 감기나 약간의 타박상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서 정말 아팠던 경험. 도저히 몸이 회복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 이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 왜 하필 내가 이런 시련을 겪게 되느냐고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은데, 생각보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더라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대학병원을 가 보면 서류 발급 수수료만으로 병원이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로 미어터지더라고.
만약 누군가 아프다면, 그 어떤 상황이 있었던 간에 그 사람의 잘못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야. 빈틈없이, 빠짐없이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살다 보면 어떤 중요한 일을 건강보다 우선순위를 두게 되기도 하잖아. 또 20대도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 걸 보면 건강이라는 건 삶의 다른 영역들처럼 운이 크게 작용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줄담배를 피우고 라면만을 먹고 산 사람도 건강하게 장수하기도 하는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사례들뿐만이 아니라 당연한 건강은 없고, 운이 좋은 건강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수술 이후 재활과 운동치료로 다시 건강해진 경험이 있는데, 그건 재활과 운동치료로 건강해질 수 있는 수준으로 아팠던, 행운은 아니더라도 호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그동안 운이 좋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불편함, 그를 넘어선 위협, 속상함을 느낄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 내가 느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을 느끼고 있는 삶이 있지.
사람마다 아픔의 감도는 다르다고 해. 동일한 손상에도 더 큰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미각이나 후각, 청각 등 특정한 감각을 타고 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더라고. 그러니까 함부로 누군가의 통증, 아픔을 나의 생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 서울대학교 재활의학과 정선근 교수는 건강을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신체적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타인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공감이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만 나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말해서 최대한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의미 있다고 생각해. ‘너를 온전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내 나름대로 경험은 이랬고 나는 그런 감정이었네’라고 말하는 거야.
우리는 힘들 때 나 혼자만 이 상황 속에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 그러다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가 있다고 한다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잖아.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 그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공감 비슷한 것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해. 하지만 꼭 비슷한 경험이 없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
김하나 작가님의 책 ‘말하기를 말하기’에서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야’처럼 건강 지상주의로 흐르는 말들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어 버린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랑을 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노력하고 성취도 이룬다.’라고 말해. 누군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를 어떤 욕구를 갈망하고, 소중한 꿈을 지닌 전인격적인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인 것 같아. 비록 건강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건강은 전부가 아니고 온전한 그 사람 전체만이 전부일 테니까. 그 사람에겐 여전히 중요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