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이재 Sep 11. 2020

세상이 멈칫해도, 우리는 내일을 향해 살아나가야 해

[문선종 사회복지사의 실존육아] 지금은 '살아온 힘' 아닌 '살아가게 될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책 「데미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코로나 19, 그리고 팬데믹의 세계. 이 세계를 파괴하고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을까?



캐나다에 가려고 했는데… 꿈도 일상도 모두 멈췄다 

영화 'City of Joy'의 배경으로 나왔던 인도 캘커타에 위치한 SHIS, 이곳에서 새로운 존재들을 통해 초월적 자아를 경험했다. ⓒ문작가


10년 전 코피온(Copion, 세계 각 나라에 봉사단을 파견하는 일을 주로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과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의 지원으로 인도에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 그때 대학생 20명으로 구성된 ‘아싸아샤’팀에 속했는데, 운 좋게 팀원들의 추천을 받아 팀장이 됐다. 당시 팀원들에게 한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낯선 곳에 가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관찰하는 자아(observing Ego)가 깨어나는데 새로운 자아를 깨워 새로운 우리의 모습을 찾아오자” 이 ‘관찰하는 자아’는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 있을 때 깨어나고, 녹화 중인 카메라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나를 본다. 즉 이 관찰하는 자아는,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며 나의 의미를 찾아가는데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하나의 세상을 깨려면, 늘 관성에 젖어 무덤과도 같은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일상에 전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았다. 나를 덮은 운명을 개척하려면 ‘이불킥’을 날리고, 나를 낯선 환경에 던져야 내 삶의 강력한 변화가 온다는 믿음이다. 이런 생각은 결혼 후 아내와 만든 가족 규칙에도 반영됐다. 그중 하나는 바로 매년 해외여행을 가자는 약속이다. 여덟 살 첫째 딸 서율이는 다섯 살 때부터 여행을 다녔다.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늘 식탁에서 이야깃거리가 됐다. 네 살 둘째 지온이는 따뜻한 나라에 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아이들은 서로의 낯선 모습을 선명하게 추억했다. 우리는 차곡차곡 경비를 모으며 새로운 목적지로 캐나다에서 한 달 살기를 꿈꿨지만, 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그 계획은 무산됐고, 우리 가족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캐나다 한 달 살기’ 프로젝트는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꽤 동기부여가 됐다. 첫째는 작년부터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공부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 볼 수 있는 영화는 영어 원음으로 설정해서 보는 굳은 의지도 보였다. 나 또한 매일 출근길에 오를 때는 ‘EBS 입이 트이는 영어’를 들으며, 아직 트이지 않은 입은 캐나다에서 반드시 터질 것이라는 기막힌 상상도 했었다. 아쉽게도 지난 광화문 집회 이후 꿈은 요원해졌지만…. 아내는 올 11월 임용고시를 앞두고 있는데, 돌봄 공백 때문에 시험 포기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더 나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많아 이런 고민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여행 가방까지 다 싸놨는데 비행기 표를 취소해야 했던 아이를 만난 적 있는데, 그 아이의 마음에는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해외 유학 중인 지인들도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왔다. 일상이 멈춰버린 것이다. 우리 삶에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겨,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공연할 거다, 언젠가는

나는 또다시 먼지 쌓인 기타를 들었다. ⓒ문작가

10년 전 인도 해외 봉사에서 만난 단원들과 지금도 서로 왕래하며 지낸다. 짧게 스칠 수도 있었던 인연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우리가 만난 장소가 인도여서가 아니다. 그 순간에 우리가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의 가치를 공유했고, 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먼 곳’이라는 장소가 아닌, ‘순간’에 실존하는 우리였기에 지금의 관계를 지탱할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그 순간은 왜곡되지 않고, 시간과 사건의 균열 속에서도 변함없었던 것은 그 순간이 우리에게 살아갈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오늘까지 궤적을 그리며 내일이 되어가고 있다. 팬데믹이라는 험난한 상황에서도 이런 삶의 궤적은 멈추지 않는다. 살아온 힘보다 강력한 살아가게 되는 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고, 미래에 던져야 할 나 자신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것이 팬데믹을 사는 우리들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해외에서 찾으려던 ‘관찰하는 자아’를 지금 여기서 찾지 못한다면, 이젠 동네 산책로에서라도 찾아야 한다. 비록 캐나다는 못 가지만 캐나다 음식은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앞서 말한 「데미안」의 구절을 변형하자면 “지금의 팬데믹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인생을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가족회의 끝에 아내와 아이들은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11월에 임용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첫째는 전학을, 둘째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록했다. 아내가 작년 12월 임용고시를 결심한 순간 방아쇠는 당겨졌고, 수많은 장막을 뚫고 날아가는 총알처럼 살아가게 될 힘을 받으며 과녁을 향하고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서율이는 피아노 체르니를 시작했다. 서율이와 한 약속 중 하나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은 못 해도, 그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자는 것이다. 나도 퇴근 후 한 시간 동안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당신 차례다. 미래를 향해 어떤 나를 던질 것인가? 다시, 지금 여기에서 팬데믹 시대를 뚫고 나오는 실존적인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아내는 고향집에 내려가자마자 중고장터에서 책상을 구했다. ⓒ문선종


※위 글은 N0.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고,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지금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moons84@naver.com


※월간 문작가를 시작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시면 매월 1회 여러분의 실존을 탐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발행드립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7567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싸움 후에 반드시 해야 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