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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이재 Jul 23. 2021

지금 당장 국어사전을 준비하세요!

[문선종의실존육아]아이의 한계는 언어에서 온다

책을 읽다 '역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아빠, 역정이 뭐야?"     

- "단어 뜻이 뭘 것 같아?"     

"좀 짜증 나는 느낌이 드는데..."     

- "그런 느낌이 맞는지 사전 찾아볼래?"     

*역정(逆情) [명사]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여서 내는 성          

모르는 단어를 찾는 습관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중요한 일이다. ⓒ문선종

요즘 첫째(9세. 여)는 국어사전에 푹 빠졌다. 국어사전을 가까이한 것은 올 2월부터다. 언제 어디서나 바로 검색할 수 있도록 국어사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놓았다. 서로 대화를 하다 어려운 용어가 나올 때나 맥락에 맞지 않게 어휘를 이해할 때는 어김없이 '국어사전'을 검색하게 한다. 국어사전을 뒤지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해당한다. 지금까지 몰랐던 의미를 다시 알게 하고, 명확한 개념이 잡히면서 더욱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그린다. 「쓰기의 말들」을 쓴 은유 작가는 '공사현장에서 떨어뜨린 나사를 찾듯 막막하지만 반드시 있다는 심정으로 글의 문맥을 꽉 조여주는 최적의 단어를 찾아 헤맨다'라며 글을 쓸 때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쓰거나 말할 수 있도록 국어사전을 가까이 두는 일은 꼭 맞는 나사를 찾는 일과 다름없다. 이는 아이도 어른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 국어사전 때아닌 호황 맞았다

지난 6월 교보문고에 따르면 어학사전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4% 급증했다고 전했다. 특히, 국어사전 판매 증가율이 140%에 이른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의 7단원에는 '반갑다 국어사전'이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7단원에는 '사전은 내 친구'가 나온다. 보통 학교 도서관에 있는 사전을 활용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서 구비하는 모양이다. 더불어 최근 6부작으로 방영해 문해력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받는 EBS 「당신의 문해력」은 학부모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어휘력이 낮은 탓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교육현장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안방에 전해졌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어휘력이 낮아 기본적인 내용조차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등 교육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어사전'이 잘 팔린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 나이가 들수록 '독서량'은 낮아지는 이유는 '어휘력'

문해력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국어사전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22개국 중 우리나라의 ‘실질 문맹률’은 75%라고 한다. 이 수치는 10명 약 7명이 글을 읽고도 뜻을 모른다는 것이다.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다. 그냥 최악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2017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전체 성인의 22%인 960만 명이 일상생활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문맹인이라고 보고했다. 실질 문맹률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문해력’의 문제를 말한다. 코로나19로 학습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2020년을 기준으로 최근 4년간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학력 미달률 추이’에서 2배가 증가했다. 학습 강도는 높아졌는데 왜 학업성취도는 떨어질까?


문체부가 2020년 3월 만 19세 이상 국내 성인 6000명, 4학년 이상 초등생, 중고교생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연간 독서량은 초·중·고 학생 전체 평균 32.4권으로 초등학생 69.8권, 중학생 20.1권, 고등학생 8.8권으로 나타났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독서량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성인은 어떨까?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52.1%, 연간 독서량은 6.1권이었다. 2017년에 비해 독서율은 각각 7.8% 포인트, 2.2권 감소했다. 성인의 40% 이상이 책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어른이 됐다고 더 이상 책을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일까?


위 내용을 보고 있자면 책을 읽지 않아서 문맹률이 높아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충분한 어휘가 습득되지 않아 책과 거리를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책의 수준이 높아진다. 언어에 대한 이해와 어휘력이 낮은 상태로 고학년으로 진학할수록 책은 '공부'에 가까워지며 '독서' 자체가 고통이 되어 버린다. 집에 국어사전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네이버나 다음 국어사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길 권한다.


◇ 지금 학년보다 수준 높은 책 보며 사전 뒤져야

초등학교 2학년 첫째에게 지금 학년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책을 읽히고 있다. 책에서 어려운 어휘를 '어휘 노트'에 적도록 하고, 그 어휘를 사전에서 찾아 뜻을 적은 후 그 어휘가 담긴 짧은 문장을 만들어보게 한다. 어휘를 사용해 자신의 경험을 끌어내 보는 것이다. 아빠표 어휘 노트를 만들어 1주일 1권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조금 힘들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다. 책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조사와 지표들이 말해주는 것은 적절한 어휘력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서 책을 멀리하는 것으로 읽힌다. 성인들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책이 귀찮아서가 아니라 독서 좀 해보려고 책을 열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자괴감을 느껴서라고 생각해서다. 키오스크를 이용이 서툴러 햄버거 주문을 하지 못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가? 햄버거를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 책을 읽고 싶어도 잃지 못하는 이유는 '언어'에서 오는 것이다.


◇ 언어는 아이의 세계를 구성한다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지만 수많은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언어'가 지니는 힘과 가치를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한 사람이다. 자신의 문제와 심정을 언어로 생각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인간의 집'이라 말했다. 언어는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자 세계관을 구성하는 입자라 할 수 있다. 대게 자신이 고통받는 문제들을 언어로 구성할 때 실마리가 풀리고, 그것을 해결할 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상담에서 내가 즐겨 쓰는 것이 '글쓰기'이다. 쓰다 보면 머뭇거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떨어뜨린 나사'를 찾듯 더듬다 보면 스스로의 세계를 재구성하게 된다. 그렇게 말과 글을 통해 나온 단어들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언어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왜곡되지 않게 진실되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국어사전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근대철학의 신이라 불리는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오늘 자녀와 함께 서점에 들르거나 국어사전 앱을 설치해보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 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7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아가 아동심리상담, 아동교육, 지역사회사업, 프로그램기획, 칼럼니스트, 사진작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위 글은 N0.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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