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대화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이제 막 6살이 된 녀석은 자기 아래 10개월 동생이 있어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이죠. '아동'은 기분 나쁘고, '언니'는 뭔가 권위가 있는 것 같아 좋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동이라는 신분을 얻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요? 아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아동’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막막하고, 공부만 해야 할 것 같고,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이 올라오지 않나요?
`아동`이라는 명목상의 개념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모자란` `잘 모르는` 어른의 소유물로 취급당하는 것 같습니다. 아동! 우리 모두가 거쳐 왔던 시절들.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나도 어릴 때 그랬어.’라며 마음의 문을 닫고 계시지는 않나요?
내 아이라고, 동생이라고, 어리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문선종
아동, 18세기의 발명품
18세기 이전에는 아동이라는 용어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동의 모습을 보면 어른들을 축소해놓은 모습이죠.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가브리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른들과 함께 혁명에 동참하는 사회의 한 일원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1960년 출간된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은 ‘아동’을 근대의 발명품자 역사적 개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중세에는 집과 거리의 경계가 모호했고, 일상이 거리에서 이루어지면서 어른과 아동의 복장, 문화 등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근대화 시기 아동에 대한 ‘귀엽고, 순진무구한’ 심상이 생기면서 귀여움이 타락하지 않도록 ‘규율’을 만든 것이죠. 아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어른과 아이가 뒤섞여 지내는 학교가 규율이 엄격한 학교로 변화됐습니다. 아리에스는 ‘아동’이라는 18세기의 발명품을 통해 18세기에서 19세기 아동들을 기숙사에 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말합니다. 아동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어른들과 함께 향유하던 자유를 박탈했고, ‘사랑의 매’라는 것을 어른들의 손에 쥐여주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구시대적인 아동의 개념은 슬프게도 오늘날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 아동을 차별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 과도한 입시경쟁과 1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그리고 더 만연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차별! 우리가 너무나 엄격한 ‘규율’로 아동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아동’이 무엇인지? 새로운 발명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아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
최근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권리를 기반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저는 ‘아동권리기반’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물을 달라고 할 때에도 예쁜 찻잔에 담아주거나 우리와 같은 구성원으로 여기고, 의사결정에 아동을 참여시킵니다. 역사적 개념의 아동은 ‘약함’ ‘귀여움’ ‘모자람’ ‘무지’이지만 이제 새로운 ‘주체적’ ‘자율적’ ‘권리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UN에서는 전 세계 아동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1989년에 UN아동권리협약을 만듭니다. 이 협약의 사상적 근거가 된 야누슈 코르착(본명/헨릭골드쉬미트)은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200여 명의 고아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아동의 자발성과 주도권을 통해 조화롭게 운영되는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한 의사이며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철학가였습니다. 그는 인류가 하지 못한 아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100년 앞서 몸소 실천하고, 아동의 권익을 위해 끝까지 맞서 싸운 인물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아동을 만날 때 늘 생각하는 소중한 분이죠.
이 협약에는 아동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가 담겨있고,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 196개국이 지키기로 약속했죠.
아동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한 세상 만들기
아동,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다. ⓒ일러스트/문선종
덴마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자 UN개발계획에서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국가라고 발표할 정도로 멋진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부모가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을지 받지 않을지를 아동이 스스로 정한다고 합니다. 10살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개인 계좌를 갖고, 주식을 사기도 하는 등 아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덴마크에서 자란 안데르센의 작품에서 그런 색깔들이 나타납니다. 「인어공주」는 아버지의 권위에 맞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나가고,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 가족과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아동으로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은 아주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동에게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는 나를 만나러 세상에 와준 고마운 존재다. ⓒ문선종
오늘 밤 아이와 잠자리에 들면서 이 말을 꼭 해야겠습니다. “서율아, 네가 인어공주처럼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서 아빠랑 싸우게 되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너 스스로 행복을 찾는 거니까. 아빠가 응원할게. 그리고 네가 아동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너를 함부로 할 수 없어. 너는 아동이고, 자유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란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지역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 유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