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칠하게 살구색 좀 줘봐.' "아니야! 얼굴은 살 색으로 칠하는 거야." - 서율아 살색이라는 말은 없어. "어린이집에 있는 OO이 걔는 살색이 아니야."
서율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이집 운동회에서 봤던 유난히 눈이 크고, 예쁜 다문화가정 아동이 머리에 스쳤습니다. ‘살색’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2002년 국가인권위에서는 살색이라는 색명은 황인종이 아닌 인종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 발표하며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을 개정토록 권고했죠. 그래서 2005년 살구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언급한 ‘다문화’라는 용어도 그 ‘살색’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맥락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도 ‘구분’ 짓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굴을 파란색으로 그리고 생각에 잠긴 서율이 ⓒ사진/문선종
우리 삶에서 늘 존재하는 차별
차별받는 신데렐라를 그린 그림 ⓒ그림/문서율
6살 꼬마 녀석에서 ‘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말할까? 참 고민이 됐습니다. 그래서 꺼내 든 것이 ‘신데렐라’ 동화책이었죠. 녀석에게 신데렐라를 읽어주고 난 후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 그리고 신데렐라의 마음은 어떨지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만약 이런 차별을 받는다면 그리고 차별이 허락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서로 이야기 나누었죠. 녀석은 자신도 차별을 받고 있다며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는 지온이만 안아주고 좋아하고, 나는 안 좋아하잖아.” 라며 동생을 더 좋아해 주는 아빠가 밉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가르친 보람은 있네요. 차별은 너무나 광범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 존재하기에 어떤 단어와도 잘 어울립니다.
성차별, 인종차별, 학생차별, 종교차별, 직장인차별, OO차별 등등
나이와 키는 어떤가요? 중학교 시절 키가 아주 작은 저는 신학기가 되면 어김없이 키순서대로 줄을 섰습니다. 그리고 작은 순서부터 큰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데 저는 3번이었죠. 제 앞에 2명이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던 웃픈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번호가 빠를수록 키가 작다고 무시받고, 차별받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차별,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순식간에 차별을 받을 수 있다. ⓒ그림/문선종
며칠 전 한 레스토랑의 어린이 놀이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서율이는 혼자 놀고 있었는데 잠시 후 남자아이들 3명이 몰려왔죠. 한 아이가 서율이를 향해 ‘괴물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곤 나머지 친구들도 괴물이라고 하며 서율이를 피하기 시작했죠. 서율이는 ‘괴물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친구들 모두 서로 아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서율이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아이들이라서 일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차별은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지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힘이 되어버립니다.
차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가정을 해봅시다. 갑작스럽게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 인간을 공격합니다. 아쉽게도 슈퍼맨과 같은 영웅은 없지만 그래도 인간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외계인과 싸웁니다. 이 상황에서는 ‘외계인VS지구인’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구분 지어 왔던 백인과 흑인, 어른과 아이, 여성과 남성 등 모든 것들이 ‘지구인’이라는 말로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정상이고, 내가 기준이라는 자존감, 이런 선의의 감정들이 생깁니다. 그것들이 지구인을 하나로 뭉쳐주지요. 이렇게 좋은 감정들이 낳은 차별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습니다. '외계인 VS 지구인'이라는 구도를 '남자 VS 여자' 혹은 '어른 VS 아동' 등으로 바꾸어봅시다. 외계인은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정상적이지 않기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분명 외계인의 입장에서도 우리는 비정상이라서 혐오의 대상이 되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만들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차별 없는 세상, 만들 수 있을까?
죽인 시인의 사회 명대사 중에서 ⓒ켈리/문선종
아동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언어는 임대아파트라는 부모의 주거환경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언어의 맥락은 어른들이 발현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을 받지 말라고 학교에 건의까지 했다는 몰지각한 어른들도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삶에 대한 선량한 자부심이 타인에 대한 부정적 차별로 이어지고, 타인보다 정상적인 삶을 향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렇지 못한 타인에 대한 불쾌감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문화는 고스란히 관습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 아이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차단하고, 우리 삶에 깊숙이 만연한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차별 감정의 철학(나카지마 요시미치/바다출판사)」에서는 차별 없는 세상의 불가능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차별을 만드는 사람들 또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그래도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영화 「죽인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세상은 말과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과 언어들을 돌아봅니다.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인종과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이념, 출신과 재산, 장애, 신분에 관계없이 절대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서율이가 자라나면서 수많은 차별을 겪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통찰력을 함께 키우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지역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 유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