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율이에게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읽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숲 속에 버리려는 계모의 의도를 알아챈 헨젤과 그레텔은 빵조각을 흘리며 아빠를 따라 산속으로 갑니다. 하지만 새들이 먹어버리는 바람에 자신들의 흔적을 찾지 못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버림받게 되죠. 그리고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마녀에게 잡히고 맙니다.
"아빠가 너를 버리면 어떻게 될까? 지난번에 아빠가 예방접종기록표 보여줬지? 그리고 네가 지금 유치원을 다니잖아. 유치원 다니는 것도 대통령 아저씨가 돈을 주시거든 그리고 네가 아플 때 병원에 가면 병원비도 줘. 그게 가능한 건 '문서율'이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 이름으로 '출생신고'가 됐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적도 취득하고, 주민등록번호도 받고, 보호도 받으면서 살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헨젤과 그레텔처럼 버려지거나 못된 어른들이 꽁꽁 숨겨놓아서 출생신고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대략 2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해. 정말 슬픈 일이지..." 동화책을 읽으며 이런 저린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흔적도 없이 살아가는 헨젤과 그레텔들
집에서 둘째의 셀프여권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축복이죠. ⓒ문선종
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찾은 책이 바로 헨젤과 그레텔이었습니다.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합니다. 출생신고를 1개월 이내에 하지 않으면 5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조금 약하죠? 그리고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집니다. 아동은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로부터 양육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특히, 국가는 위와 같은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으며 무국적 아동이 존재하는 경우 더 큰 의무를 가져야 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기근과 가난으로 아동 살해가 일반적인 중세시대의 악습을 경고하는 이야기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요?
◇잃어버린 흔적... 빵조각
동화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의 집을 다시 찾기 위해 빵조각을 길에 흘립니다. 하지만 새들이 먹고, 바람에 흩날리면서 자신들의 흔적을 찾지 못해 산속에 갇히게 되죠. 모체의 요람에서 생명이 자라기 전부터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맥락과 뿌리를 아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노르웨이에 입양된 얀 소르코크(45·한국 이름 채성우)씨가 여권에 기록된 1974년 1월 18일 대한민국 출생이라는 흔적 하나만으로 5년 동안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섰지만 쓸쓸하게 고시텔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모른다면 어떻습니까? 잃어버린 그것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발품을 팔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존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자신의 흔적들이 지워져 유령처럼 세상의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그늘 속에 지내는 아동들이 무려 2만 명이 됩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컴컴한 숲 속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립니다.
◇법의 맹점, 반드시 보완해야 합니다.
두 딸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아빠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대한민국이 모든 아동에게 좋은 나라라는 것을 자부심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법의 맹점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아동들이 있습니다. 있지도 않는 아이를 출생신고 해 수 천만 원의 양육수당을 부당 수급한 사례, 학대 끝에 18년 만에 세상에 발견돼 출생신고를 한 사례,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2절 제44조의 2를 보면 출생신고의 의무가 신고의무자(부모, 보호자)에게 있습니다. 자녀가 오로지 신고의무자에게 귀속되는 것이죠. 아동의 존재가 신고의무자에게 달려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동의 정보가 조작되거나 등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UN에서 권고한 것이 바로 보편적 출생신고제도로 출산을 목격한 병원, 조산사 등이 의무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한 아동의 출생은 보편적 인권(Universal Human Rights)으로 반드시 국가가 보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동의 출생을 확인하는 기관인 병원에서 발행하는 출생증명서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효력 있는 제도입니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를 어른들이 의무자가 되어 '이름'과 '국적'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자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기에는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의사들은 부모의 '의무'를 병원에 떠넘기는 것이고, 출생신고를 원치 않는 산모가 의료기관을 피해 출산할 수 있어 산모와 태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입양을 위해 출생신고를 필수로 해야 하는 입양특례법 제정 이후 아이를 유기하는 사례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밖에도 난민 아동과 같이 무국적 아동과 같은 이슈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름과 국적은 존재의 집입니다.
만약 이름을 먹는 괴물이 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 질 것 같습니다. ⓒ문선종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의 눈에 보인다고 해도 '이름'과 '국적'과 같은 언어로 이루어져있지 않다면 '소외'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라는 전체에서 망각되어 가겠지요? 출생신고는 한 아이를 존재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하고, 고귀한 일입니다. 자라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름과 국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세워나가길 응원합니다. 더불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아이들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을 간절히 바라봅니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지역사회개발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볼 만한 아빠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