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우리의 실존
※아래 글은 부산교육청 2020 여름 제94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제 BC(Befor Corona) 코로나 이전 시대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 시대로 나뉘었다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사태는 단절과 고립을 만들었고, 그동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만들었던 공동체는 뿔뿔이 흩어져 ‘비대면’ 사회로 전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와 우울증이 만나 만들어진 신조어 코로나블루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지금,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실존의 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인간 불안의 근원적 정신역동 죽음, 소외, 무의미
코로나블루는 질병이 아니다. 심리적인 증상이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절을 만들었고, ‘고립’됐다는 불안감이 불면과 식욕부진에서부터 심하면 공황까지 증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죄수들을 ‘독방’에 가두는 것이 형벌 중 가장 높은 등급이라 말한다. 독방에서 10시간이 지나면 뇌가 마치 굶주렸을 때와 같이 극심한 고통의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공감과 협력, 사랑으로 진화해왔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외로운 존재이기에 ‘혼자’라는 상황은 크나큰 고통이다. 최근 상담한 아동은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학교에 가고 싶다’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속에는 우리 삶에 던져야 할 질문들이 담겨 있다.
5년 전 세계 3대 과학 잡지 중 하나인 네이처 메디슨에서는 코로나 사태를 예견했다. 지금의 사태는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지금 이 시나리오가 인간의 근원적인 실존적 정신역동을 단단히 건드리고 말았다. 실존주의에서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정신적 문제가 죽음과 소외, 무의미에서 온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기본적으로 감염 공포로 죽을 수 있다는 불안을 불러왔으며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사회적 소외(Social Isolation)는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자괴감까지 들게 만들었다. 현재 해외에서는 코로나19 심리적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며 자살률 증가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격리자가 몰래 돌아다니는 무책임한 행동, 이태원클럽發 확진자 급증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유흥업소 세태들은 우리가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 회피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비대면 시대에 인간 거대한 불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죽음, 불안, 무의미와 대면하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아이들
지난 3월 필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코로나19로 문 닫은 아동센터에 긴급 물품지원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 동구지역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힘든 상황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동시통역사가 꿈이라는 여진(가명, 11살)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평소보다 1시간 더 일찍 기상해 자신이 계획한 일과표대로 공부를 했다. 해외거리에서 길을 잃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동시통역을 해주는 등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내일 지구 멸망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죽어야지. 무슨 사과나무를 심어?’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여진이를 보면서 ‘사과나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할 수 있는 상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지만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태도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코로나19가 불안과 공포, 우울에 직면하게 만들었지만 인생에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욱 선명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돌아볼 순간이다.
코로나블루 극복할 수 있다!
한 고전연구를 통해 코로나블루 극복의 답을 찾아보자. 노동자 구성원들을 A와 B그룹으로 나누고, A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소음이 들릴 것이라고 알려줬다. 만약 소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경우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소음이 사라질 것이라 전달했다. 하지만 B그룹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실험은 어떻게 됐을까? A그룹은 소음이 나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작업을 진행했다. 더불어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B그룹도 A그룹과 동일한 소음을 들으며 작업했다.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아주 큰 차이를 보였다. A그룹은 소음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나지 않은 날과 마찬가지로 생산성이 같았지만 B그룹은 소음이 나지 않은 날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작업 중 실수를 했으며 노동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버튼’이다. A그룹은 버튼을 누르면 소음의 상황이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B그룹은 덫에 걸려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없어’라는 절망적인 인지적 상황이 스트레스 반응을 증가시켰다. 공황장애의 경우도 이런 ‘덫에 걸렸다’는 비합리적 인지만 바꿔도 증상이 호전될 정도라 ‘믿음’의 차이는 우리의 정서와 행동을 결정한다. 결론적으로 코로나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누구보다 자신을 믿으며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코로나블루를 극복할 수 있는 ‘실존적인 기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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